[영남시론] 언론중재법, 핵심은 '언론의 괴롭힘'이다

  • 유영철 전 영남일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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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8-04   |  발행일 2021-08-04 제27면   |  수정 2021-08-04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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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철 전 영남일보 편집국장

언론은 언론중재위원들 앞에서는 고분고분했다. 기사가 어떻게 생산되는지 훤히 알고 있는 오랜 경력의 기자 출신, 언론학 전공 교수, 위법성 판단 전문가인 변호사, 현직 수석부장판사(중재부장)가 중재위원으로 중재를 하고 있으니 의기양양한 언론도 실제와 이론 양면으로 이들이 만만하지 않다. 중재신청 내용을 보면 언론이 관공서 또는 업체를 대상으로 사실 확인도 없이, 제보만으로, 기사요건도 갖추지 않고, 감정적으로, 터무니없이 쓴 기사들이 많았다. 광고나 구독의 홀대 또는 차별이 발단이 된 기사도 많았다. 단순 실수가 아닌 고의성도 많았다. 그런데 많은 언론은 기사 쓰던 방식과는 달리 중재위원의 중재조정에 따르면서 피해를 입은 신청인의 정정·반론을 쉽게 수락했다. 그리고는 되풀이도 잦았다. 지난해까지 3년간 언론중재위원을 하면서 느낀 점들이다.

요즘 언론중재법이 관심사가 되고 있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지난달 27일 국회 문체관광위 소위에서 통과됐고 민주당은 이달 임시국회에서 처리할 방침이어서 큰 쟁점으로 부상했다. 개정안은 허위·조작보도, 이른바 '가짜뉴스'를 생산한 언론사에 대해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주요 내용이다. 이에 대한 찬반은 확연했다. 민주당은 환영한 반면 국민의힘 당은 반발했다. 한국기자협회 등 5개 현업언론단체는 비판성명을 냈다.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반헌법적인 법' '전두환 시절 보도지침과 유사한 점 있다'는 지적도 했다. 주요 종합일간지들도 반대하는 기조였다. '기준 모호' '언론자유 위축' '검열시대 되돌림'이라고도 했다. 지지하는 당에 따라 시민들의 찬반도 다르게 나타난다. 그렇다면 개정 언론중재법의 핵심은 무엇인가. 목적은, 의미는 무엇인가.

나는 언론중재법의 핵심(주제)은 '언론의 괴롭힘'이라고 본다. 사실 언론은 예로부터 괴롭힘의 역사를 갖고 있다. '언론역할론'을 강조할 때 제퍼슨이 자문자답한 "신문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노라"며 기염을 토한 선언문이 자주 인용된다. 하지만 대통령이 되고 나서 얼마나 괴롭힘을 당했으면 "신문을 읽지 않는 시민이 신문을 읽는 시민보다 더 나은 선택을 한다"며 언론을 불신했을까. 1960년대 말 강원도 황지(黃池) 좁은 바닥에 80여 명의 '언론인'들이 북적대며 돈을 뜯으며 관공서와 업체를 괴롭힌 '황지신문인협회사건'도 있다(이상우·1969·'한국신문의 내막').

자사 기자가 허위나 조작으로 괴롭히는 기사를 쓰면 언론사가 배상하도록 하는 징벌을 가하여 그 괴롭힘을 방지하겠다는 것이 언론중재법의 목적이다. 괴롭힘의 해소가 그 취지다. 언론이 허위조작보도 등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괴롭히지 않으면, 사도(邪道)가 아닌 정도(正道)를 걸으면 아무런 영향이 없음을 의미한다. 폭력행위 등 처벌법이 있더라도 그런 행위를 하지 않으면 저촉 받지 않는 것과 같다. 그래서 이 같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언론재갈법' '언론자유 침해' 운운하며 반대하는 그 숨은 의도가 무엇인지 의아할 따름이다. 괴롭힘의 행위를 관성처럼 하고 싶은데, 법으로 징벌 받게 하겠다고 하니까 '표현의 자유'까지 거론하는 것은 견강부회다. 괴롭힘은 권력의 감시·견제의 사유가 될 수 없다. '괴롭힘'을 성찰하고 언론사 스스로 윤리적 자율적으로 타개하면 이상적이다. 자율로 하지 않으니 방지를 위해 법(法)을 동원하는 것이다. '모호한 기준' '제한된 대상' 등 정치(精緻)하지 못한 점은 보완하면 될 것이다.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는 숭고한 개념이다. 아무렇게나 호출하지 말아야 한다.
유영철 전 영남일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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