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석 지음/갈무리 / 400쪽/2만2천원 |
플랫폼 기업이 우리 생활 전반을 움직이는 사회로 변하고 있다. 교통·금융 등 생활 속 밀접한 서비스는 물론이고, 문화·여행·게임 등 여가 분야로도 활동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기술, 사회, 문화가 상호 교차하는 접점에 관해 연구, 비평 활동을 해온 저자는 이 책에서 디지털 기술세계가 확대되면서 파생된 '피지털(phygital)'계에 대해 조명한다. 피지털은 '피지컬(physical·물질)'과 '디지털(digital·비물질)'을 합쳐 만든 단어다.
'피지털'을 비즈니스에 적용한 사례로는 식당에서 키오스크로 주문을 하거나, 오프라인 매장 상품에 붙은 QR코드로 상품 정보를 조회하는 것이 있다. 이 책에선 '피지털' 현상을 좀 더 넓게 바라본다. 저자는 피지털계가 출현하면서 디지털 신기술이 물질계의 저항과 자원 배치를 좌우하는 현실에 놓여있다고 판단한다.
이처럼 확장된 영역은 우리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지만, 한편으로는 플랫폼 기업에 디지털 기술의 논리로 물질계의 지형과 자원의 배치를 좌우하는 현실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코로나19 상황의 가장 큰 수혜자 중 하나인 배달 플랫폼의 경우를 봐도 그렇다. 배달 앱의 알고리즘은 배달 노동자들의 노동을 초·분 단위로 통제한다. 자영업자들의 상황도 배달 앱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자영업자들은 이 플랫폼에 의존하고 수수료를 부담하지 않고선 영업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플랫폼이 만들어놓은 별점 평가 시스템은 이용자들에게 제일 나은 선택을 하는 데 도움을 주지만, 갈등의 원인이 됐고 이로 인해 노동자와 자영업자가 생존 위기에 처했다. 넷플릭스 등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도 성공 이면에는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노동자들의 과중한 노동, 열악한 노동이라는 부정적인 면이 존재한다. 책에 따르면, 일상적으로 이뤄지던 호혜적 행위들을 이제 플랫폼 기업이 흡수해 이익을 낸다. 예를 들면 동네에서 이뤄지던 카풀은 우버나 집카가 하고 있고, 자는 공간을 나누는 지역 문화는 에어비앤비가 흡수했다.
책에선 플랫폼 자본주의의 하위 모델인 '유익하고 선하다'는 공유경제 모델에 대해서도 비판한다. 이는 상호 부조나 호혜적 공유와는 다른 승자 독식의 자원 중개 시장 모델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최근에는 열렬한 시장주의자조차도 이젠 '공유'경제라는 용어 자체를 쓰기가 민망해 이를 버리고 열악한 시장 현실을 지칭하는 용어들, 아예 '자원 중개 경제'나 '긱 경제'(산업 현장에서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수요자가 필요할 때마다 임시로 계약을 맺고 일을 맡기는 경제 형태)로 솔직하게 기술하자고 말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저자는 플랫폼 질서에 맞선 다른 삶에 대한 방법으로 '커먼즈(공통장)' 운동을 제안한다. 공유경제가 가진 비인간적인 부분, 기술 효율성이라는 논리를 넘어서자는 것이다. 시민 스스로 윤리적인 소비자로 역할을 하는 것 외에 수많은 유무형 자원에 대한 공동 생산, 운영, 배분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저자는 피지털계 출현 자체만 놓고 보면 커먼즈를 지지하고 돌보는 이들인 '커머너'들에게는 기회라고 본다. 하지만 피지털계에서 주도권을 플랫폼 기업이 잡게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특히 4차 산업혁명 이후 등장한 메타버스 열풍에서 이러한 양상은 극한으로 치달을 것이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메타버스 세계에는 기업이 이야기하는 시장 질서만 존재할 뿐 시민 권리와 공통의 호혜 관계에 대한 가치는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상황에서 커머너들이 스스로 일구는 공생의 가치와 함께 디지털 기술의 자유문화적인 속성을 연결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최미애기자 miaechoi21@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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