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영화] 피부를 판 남자, 희망없는 난민에서 살아있는 예술품으로 새 삶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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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2-17   |  발행일 2021-12-17 제39면   |  수정 2021-12-17 08:57
돈과 자유 얻기위해 자신의 피부를 작품으로 계약

무거운 주제속 유머·스릴·로맨스 균형있게 버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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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시리아. 샘 알리(야흐야 마하이니)는 사랑하는 연인 아비르(디아 리앤)와 함께하는 삶을 꿈꾸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시리아를 탈출한다. 그사이 아비르는 가족이 정한 상대와 결혼해 벨기에로 이주하고 레바논으로 도망쳐온 샘은 희망없는 난민의 고단한 삶을 살아간다. 어느 날 유명 예술가의 갤러리를 찾은 샘은 손님인 척 입장해 제공된 음식을 먹고 가방에 담는다. 다음 날에도 갤러리를 방문하지만 그가 난민이라는 걸 눈치챈 관계자는 초대 명단에 없다는 이유로 샘을 내쫓는다. 그런 그를 제프리 고드프루아(코엔 드 보우)가 불러 세운다. 그는 쓸모없는 물건도 수백만 달러 가치의 예술품으로 재탄생시키는 천재적인 예술가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제프리는 샘에게 흥미로운 제안을 하게 되고 돈과 자유가 필요했던 샘은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 제안은 바로 샘의 등에 타투를 새겨 '살아있는 예술품'으로 평생 전시되는 것이다.

'피부를 판 남자'는 살아있는 인간을 예술품으로 전시한 악명 높은 아티스트 빔 델보예의 실화를 모티브로 했다. 그는 팀이라는 남자의 등 피부에 타투를 작업하여 미술관에서 전시하고 사후에는 그의 피부를 액자에 보관하는 계약을 맺었다. 영화는 이 같은 충격적인 사실에 시리아 난민 문제를 접목시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생각거리를 던진다. 또한 인권 착취마저 전위적이고 도발적인 현대 미술의 또 다른 형태로 치부하는 미술계에 대한 따끔한 일침도 잊지 않는다.

기피 대상이었던 시리아 난민에서 살아있는 예술품이 된 샘은 현재의 삶에 만족한다. 유럽을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솅겐 비자는 물론 퍼스트 클래스 항공권과 5성급 호텔 등 어느 누구 부럽지 않는 부와 명예를 얻었다. 하지만 시리아 난민 보호단체는 그가 서커스나 동물원 구경거리처럼 착취당하고 있다며 우려를 표한다. 샘은 이를 일축하지만 사실 그는 제프리가 그동안 마음속에만 품어왔던 것을 실현시킨 획기적인 작품에 불과하다. 제프리는 말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물건이 사람보다 훨씬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으니까. 이렇게 상품 같은 형태로 탈바꿈하면 샘도 이 시대 풍조 아래 인간성과 자유를 되찾을 수 있다"고 말이다. 그의 말마따나 역설적이다.

자유와 인권을 화두로 삼은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이야기지만 영화는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유머와 스릴, 로맨스를 균형감있게 넘나든다. 인간의 존엄성마저 자본주의적 상품화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위험성을 경고한 은유와 풍자도 적당하다. 튀니지 여성 감독 카우타르 벤 하니야의 신작으로, 지난해 베니스 영화제에서 오리종티 남우주연상(야흐야 마하이니)을 수상했다. (장르:드라마 등급;12세 이상가)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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