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기자의 카페로드] 동구 능성동 '블루마운틴'...빼곡한 송림 속 '글램핑 카페'…힐링랜드서 즐기는 문화예술은 '덤'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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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1-28   |  발행일 2022-01-28 제35면   |  수정 2022-01-28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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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15번 정도 각종 공연을 열었다. 블루마운틴은 송림을 문화와 예술이 있는 힐링숲으로 만드는 게 꿈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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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기애애한 캠프파이어 토크를 즐기는 가족단위 손님들.

지난주 금요일 오후 팔공산 자락에서 처음으로 글램핑 카페의 신기원을 연 동구 능성동 '블루마운틴'을 찾았다. 글램핑은 '화려하다'는 뜻인 영단어 '글래머러스(Glamorous)'와 '캠핑(Camping)'을 혼합해 만든 신조어. 2015년부터 국내에서 붐을 일으킨다.

서쪽엔 송림, 그 옆에 있는 유럽형 펜션 같은 카페가 시대를 초월해 다정스레 대화를 나누고 있다. 송림 안은 동굴처럼 어둑하다. 햇살이 빼곡한 송림 안으로 쉬 틈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간신히 송림 안으로 용암처럼 스며들어온 햇볕은 더욱 고혹해 보인다. 송림 곳곳에 포진한 8동의 글램핑 전용 대형 캠핑용 텐트는 삼삼오오 모여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있다. 너무 상업적인 글램핑장은 텐트 사이가 너무 촘촘해 답답한데 여긴 널찍한 게 너무 좋다.

카페 진입로 초입에 간판이 놓여 있다. 블루 바탕에 흰색 고딕체 글씨로 꾸며진 아크릴 통이다. 꼭 '현대판 성황당'같다. 블루마운틴. 세계적 명성을 날리는 커피 브랜드 중에 자메이카 블루마운틴이 있다. 그걸 염두에 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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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향기와 글램핑 문화가 공존하는 캠핑카페 블루마운틴 초입 전경. 소나무 700여 그루가 성성하게 캠핑장을 감싸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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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경을 품은 블루마운틴 글램핑 텐트.

◆대구 첫 글램핑 카페 블루마운틴 '주인은 상록수'

예순을 바라보는 윤갑용 대표와 인사를 나눴다. 닉네임은 '능성동의 상록수'. 허물어질 듯한 마을회관을 새로 짓고 어르신을 위해 위안잔치를 벌여준다. 좁은 마을안길도 넓혔다. 능성동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타향인과 안면트기를 '문화운동'으로 승화시키려고 노력했다. 덕분에 그는 2년째 공산동 통장(46명) 협의회장을 맡으며 '팔공산문화역사포럼' 등을 돕고 있다.

그의 지난 삶은 참 고단했다. 해태제과 하양공장 기술자에서 독립해 진량공단 근처에서 일식당을 연다. 하지만 주방장과의 갈등의 골은 깊고 신산스러웠다. 이후 수소보일러업체, 심지어 돼지농장을 위해 필리핀으로 가기도 했다. 중국에선 골프장 사업, 마지막엔 경산에서 고깃집까지. 이 와중에 모 국회의원 비서관 생활도 병행. '마당발 윤갑용 시절'이었지만 그 어느 것도 자기 것이 되지 못했다. 설상가상 우울증까지 덮친다.


700여그루 소나무향 가득한 문중 땅
대구 첫 글램핑 카페로 '인생 제2막'
詩낭송·국악·포크 뮤직·블루스 등
계절별 맞춤 공연·캠프파이어 축제



어느 날 고개를 돌리니 그동안 안중에 없었던 고향(능성동)이 보이기 시작했다. 종손이었고 400년 전 파종된 파평윤씨 능성동 입향조의 피가 흐른 탓이리라. 그동안 카페 옆 송림은 동민들에겐 공동묘역으로만 보인 것도 사실이다. 그는 역발상을 했다. 여기는 대구 첫 글램핑 카페, 그리고 새로운 힐링랜드!. 문중 땅은 1만3천200㎡(4천평). 거기에 조상의 묘소가 32기 흩어져 있었다. 문중회의를 통해 선영을 혁파한다. 봉제사 대상 묘만 남겨놓고 나머지는 파묘.


8년 전 인생 2막의 시작을 '글램핑카페'로 결정한다. 문중 땅의 일부를 공유하게 됐다. 길이 150곒, 폭 70곒. 그 안에 700여 그루의 소나무가 있다. 1년간 직접 인테리어를 주도하면서 건물을 짓는다. 하지만 제대로 된 글램핑용 텐트 제작업체가 국내에는 없었다. 서울의 모 회사를 통해 주문제작을 했다. 데크도 만들고 전기패널도 깔고 TV까지 설치했다.

매일 캠프파이어 축제도 연출했다. 계절에 맞는 공연도 유치했다. 대구 로열오케스트라와도 손을 잡았고 서울 미사리 라이브 가수 박희수, 대구KBS 문화창고 녹화 때 장미여관이 공연도 했다. 지금까지 15번 정도 공연을 했다. 점차 송림은 시낭송, 국악, 포크뮤직, 블루스 등 여러 공연 장르가 넘나드는 힐링·문화·예술의 숲으로 업그레이드 되었다. 최근에는 우천 시 고기를 편하게 구워 먹을 수 있게 그릴링룸, 쿠킹룸, 샤워실 등도 구비해놓았다.

그는 2016년 늦깎이로 경북대 농대를 졸업한다. '레저문화 활성화 방안'이란 학사논문도 작성한다. 내친김에 임업후계자 수업도 받았고 그 결과 대구에선 서식하기 힘든 울릉도 명물 명이나물을 송림 한 편에 식재하는 데 성공한다. 매년 3월 말 골수 단골과 명이파티도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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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브런치 메뉴인 베이컨크림파스타와 필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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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유리창 너머로 겨울바람을 안은 글램핑장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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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원두는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종자를 갖고 파생시킨 파푸아뉴기니 마라와카 종만 사용해 아메리카노를 빚는다.

◆여긴 가족경영

그는 글램핑, 아내(권영수)는 브런치, 아들(원탁)은 커피, 며느리(고은미)는 커피와 빵, 딸(서경)은 베이커리에 올인한다. 원탁씨는 승부사 기질이 다분하다. 아버지가 고향으로 돌아온 결정에 박수를 보내며 자신도 고향행을 결심한다. 일본 도요타 협력사에서 엔지니어로 일을 하다가 커피 로스터로 급선회. 2017년 2월 경남 양산에 '플랫컴퍼니'란 로스팅 공장을 오픈하기 전 그는 하루 서너 시간만 잠을 자며 커피의 모든 것을 독학했다. 머신을 직접 분해·결합하기도 했다. 직접 원두를 싣고 서울, 부산, 거제도, 양산, 울산 등의 카페 주인을 만나 직판 공세를 펼친다. 많을 때는 12개 카페를 찾아다녔다. 그 공력이 고스란히 지금 여기 블루마운틴에 녹아든다. 이곳 원두는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종자를 갖고 파생시킨 파푸아뉴기니 마라와카 종만 사용해 아메리카노를 빚는다. 브런치 메뉴 중 1만5천원짜리 베이컨 크림 파스타와 필라프의 맛이 인상적이다. 글램핑 이용 가격은 크기에 따라 10만(2인 기준)~15만원(6인 기준). 조식으로 모닝빵과 커피가 제공된다.


글램핑 담당 주인장, 아내는 브런치
아들은 커피, 며느리·딸은 베이커리
파푸아뉴기니 마라와카 원두만 사용
베이컨 크림파스타·필라프 인기메뉴


기자의 눈엔 여기가 비즈니스가 아니라 한 가족의 꿈이 자라는 드림랜드 같았다. 가족 모두 카페 옆 별채에서 산다. 손자가 태어나면 3대가 함께 옹기종기 모여 살 거란다. 극도의 핵가족 시대, 많이 얻는 것 같은데 실은 많은 걸 상실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블루마운틴에서 새로운 희망의 길을 잠시 생각해 봤다. 조만간 인근 대구와 경북의 경계에서 경계음악회를 벌여도 좋을 것 같다. 동구 팔공로 1505-1. 매주 수요일 휴무. 오전 10시 오픈. (053)853-8888

글·사진=이춘호 음식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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