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정의 소소한 패션 히스토리] 20세기 힙합과 2000년대 패션…'힙'하게 돌아왔다

  • 한희정 계명대 패션디자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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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4-22   |  발행일 2022-04-22 제37면   |  수정 2022-04-22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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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오버 사이즈의 힙합 패션.

최근 몇 년간 국내 힙합(Hip Hop) 음악과 댄스 오디션 프로그램의 인기가 높아지고, 힙합 가수들의 TV 예능 프로그램 출연 등으로 다양한 힙합 스타일의 문화와 패션을 접하게 되었다. 힙합은 1980년대 미국 중심으로 인기를 끌게 되었고, 힙합 문화는 국내에서 1990년대 초반부터 주목받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젊은 층을 중심으로 사회문화적으로는 물론, 패션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는 지나간 시절을 그리워하는 레트로(Retro)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함께, 현재 문화적 대세를 이루는 Z세대-주로 90년대 초 젊은 문화의 주류였던 X세대의 자녀 세대의 부상 영향 등으로 생각할 수 있다.

80~90년대 힙합 이끈 X세대 자녀 부상
속옷 보일 정도로 내려간 헐렁한 바지
굵은 금목걸이·버킷햇·나이키 농구화
화려·강렬한 색과 오버사이즈 실루엣
길거리 패션에서 주류 문화로 자리매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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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다양해진 힙합패션 스타일

90년대 국내는 아직 힙합 음악의 한 축인 랩(Rap)이 대중화되지 않았던 시기로, 서태지와 아이돌이 참가했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낮은 점수와 평가를 받은 유명한 일화가 있다. 힙합 문화는 대표적인 하위문화이다. 하위문화는 어떤 한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혹은 주류문화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그 사회에서 전체적 문화와 다른, 독자적 특성을 보여주는 소집단의 문화를 일컫는다. 이들은 대부분 소수민족, 노동자 문화, 청년 혹은 청소년 문화 등으로 그 사회의 주류문화에 속하지 못하는, 그와 대비되고 이질적인 '그들만의' 가치와 문화를 가지고 있다.

힙합은 1970년대 미국의 주요 문화와 경제 도시인 뉴욕 맨해튼 북쪽에 위치한 브롱스 지역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생활과 음악에서 시작하였다. 대중적으로 확산하고 인기를 끌었던 1980~90년대 힙합 음악의 내용은 그들이 겪는 인종차별, 우범지대의 생활환경, 갱단, 마약 밀매, 총격전 등으로 주변 친구와 가족들을 잃거나 교도소에 수감되는 등 불우하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 그들이 가진 사회적 불만과 분노의 감성과 경험을 이야기하듯 격하고 자유롭게 분출한 것이다. 쌓였던 감정을 빠른 속도의 리듬에 맞추어 각운을 이루는 가사를 읊어냄으로써, 이를 통해 래퍼 자신이나 듣는 사람들도 공감과 쾌감을 느끼면서 그들만의 문화를 확장해갔다.

1980~90년대 독보적으로 힙합 시대를 이끌었던 스눕 독(Snoop Dogg), 국내에도 대중적으로 유명했던 엠씨 해머(MC Hanner) 등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주도한 힙합 음악과 문화는 90년대 후반 들어 백인 힙합가수 에미넴(Eminem)의 인기로 인종을 넘어 그 소비층이 더욱 확장되었다. 미국 힙합 음악에서 주로 영향을 받은 국내 힙합 음악은 90년대 대중음악으로 형성되어 가수 서태지와 아이들, 현진영 등을 시작으로 2000년대 에픽하이와 지코 등으로 이어져 보다 새로운 스타일을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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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트랙슈트와 굵은 금목걸이의 힙합 패션.

힙합 문화 속 그들의 감성을 외면으로 표현한 1980~90년대 힙합 패션은 이러한 힙합 문화와 음악, 그리고 가수에 영향을 받으면서 창출되었다. 속옷 팬티의 허리 고무 밴드까지 보일 정도로 허리선이 내려간 헐렁한 바지, 3~4사이즈는 크게 보이는 헐렁한 티셔츠와 점퍼, 그라피티 벽화의 자유로운 낙서가 프린트된 티셔츠, 큰 체크무늬의 셔츠와 재킷, 부품한 패딩 재킷, 번들번들한 광택의 보머 재킷, 트랙 슈트(Track suit), MLB와 NBA 저지 티셔츠 등의 의류, 그리고 액세서리로는 굵고 과감한 금목걸이, 고가의 큰 손목시계, 앞뒤 거꾸로 착용한 야구모자, 벙거지 모자라고도 하는 버킷 햇(Bucket Hat), 팀버랜드 부츠,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와 나이키의 스니커즈와 농구화 등이 포함된다.

특히 엉덩이가 보일 정도로 내려간 바지허리선 위로 보이는 속옷 팬티의 허리 고무 밴드에는 캘빈 클라인(Calvin Klein) 등 패션 브랜드 이름이 노출되어 일부러 팬티 허리 밴드를 보이게 착용하였다. 이렇듯 '축 처진'을 의미하는 영단어 새기(Saggy)를 붙인 새기 팬츠와 '헐렁한'의 뜻인 영단어 배기(Baggy)를 붙여 바지 밑위가 길고 여유 있는 폭의 배기 팬츠가 인기를 끌었다. 새기 팬츠는 90년대 힙합 패션에 이어 최근 몇 년 전 미국 가수 저스틴 비버가 과도하게 내려 입은 스타일로 착용하고 나와 한때 문제적 시각을 보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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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정 (계명대 패션디자인과 교수)

여성 힙합 패션에서도 팬티의 허리 고무단 브랜드가 노출될 정도로 내려가거나 혹은 골반에 헐렁하게 걸친 허리벨트, 헐렁한 바지통의 청바지는 유사하였으나 상의에서는 헐렁한 티셔츠와 함께 상체에 꼭 맞거나 혹은 배꼽 부분이 노출된 짧은 길이의 크롭(Crop) 니트와 티셔츠도 함께 유행하였다.

1980~90년대의 강렬하고 건들거렸던 힙합의 특성은 2000년대 들어 새로운 스타일로 변화되었다. 화려한 원색적 색감과 오버 사이즈의 실루엣은 무채색과 스키니 팬츠 등도 포함하게 되었다. 음악가이자 패션디자이너인 카니예 웨스트(Kanye West)의 말끔하고 고급스러운 정장을 필두로 하여 하위문화 패션이었던 힙합 패션은 루이뷔통 등 해외 명품 브랜드에 디자인 영감을 제공하면서 새로운 스타일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힙합 감성을 포함한 스트리트 문화와 패션의 확장으로 남성복에서는 버버리와 루이뷔통 등 고급 브랜드와 스트리트 브랜드가 협업하고, 또한 구찌도 그라피티 아티스트와 협업하는 등 변화된 컬렉션을 제시하고 있다.

길거리 패션으로 직역되는 스트리트 패션은 힙합을 포함한 하위문화 특성의 패션 스타일로, 이제 패션 스타일의 주요 분야가 되었다. 슈프림, 오프화이트 등 세계적인 스트리트 브랜드는 소수 집단의 하위문화의 특성을 동시대적 감성에 맞추면서 주류 패션의 유행과 인기를 이끌고 있다. 20세기의 반(反)문화적 하위문화였던 힙합은 이제 2000년대 패션과 문화를 이끄는 대표적인 주류 문화로 굳혀졌다.

<계명대 패션디자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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