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우울증이냐고?…의지 아닌 의술 필요한 엄연한 질병입니다

  • 노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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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5-17   |  발행일 2022-05-17 제16면   |  수정 2022-05-17 07:54
우울증 환자 3명 중 1명은 남성
여성과 달리 공격성·짜증·무관심 등 증상…심하면 극단적 선택
약만 잘 먹어도 50~70%는 치유…경두개자극 치료·상담 등 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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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남성은 과거부터 현재까지도 '어떤 어려움도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라는 식의 강인한 남성 역할을 강요받아왔다. 이런 탓에 특히 남성, 그중에서도 보수적인 대구경북 남성들은 이런 어려움을 겪어도 기댈 곳을 찾기보다는 숨는 것을 택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게 현실이다. 힘들고 우울해도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약함'으로 취급받고, 남성 답지 않다며 손가락질 받을까 걱정해서다.

10~20대 남성은 우울감과 스트레스를 드러내는 것 자체를 스스로 패배자라고 느끼는 탓에 감정에 당당히 맞서는 것을 피한다. 40~50대 남성들은 가정에서 부인과 자녀들에게는 이해받지 못해 외로움을 느끼고, 직장에서는 중간 관리자로서 고립감을 경험하면서 우울감을 느끼게 된다. 왕성하게 활동하다 물러난 60대 이상 남성들은 자신에 대한 무가치감을 느끼며 존재 자체에 대한 회의감을 느낀다.

다행히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줄어 우울감으로 힘들어하는 남성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 높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료에 나서는 남성들은 생각보다 적다. 우울증은 결코 약함이 아니라 돌봄과 치료를 받아야 하는 질병인 만큼 적극적인 치료에 나서야 한다고 전문의들은 입을 모았다.

◆우울감과 우울증은 구분해야

우울감과 우울증의 용어를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우울감은 정상적으로 인간이 느끼는 기쁨, 슬픔, 분노, 공포 등과 같은 여러 기분 혹은 감정 중 하나다. 우울감은 자신의 노력으로 좋아질 수도 있고, 저절로 좋아질 수도 있는 일시적인 감정 상태다. 또 비교적 명확한 원인이나 계기가 존재한다.

그러나 우울증은 이런 우울감과 다르다. 치료가 필요한 명백한 병적인 상태로, 개인 스스로 노력이나 의지로 쉽게 좋아지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우울증은 이런 상태가 비정상적으로 오래 지속되고 원인이나 계기가 되는 사건에 비해 너무 심한 우울감을 경험하는 상태를 말한다.

우울증은 식욕이나 수면상태의 변화, 부정적 사고, 비특이적인 신체증상, 무력감과 피로감, 의욕저하 등 다양한 증상이 동반된다. 심할 경우 자살에까지 이를 수 있다.

계명대 동산병원 이호준 교수(정신건강의학과)는 "진료실에서 환자를 보면서 가장 안타까울 때가 우울증 환자에게 가족이나 지인들이 '너는 의지가 약해서 우울증 극복이 안 된다' '의지만으로 충분히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으니 병원이나 약에 의지하지 마라'라고 말을 하면서 우울증 환자를 비난하는 경우다. 이는 우울감과 우울증을 혼동하거나 제대로 우울증이라는 병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면서 "우울증은 병이기 때문에 그 개인이 극복할 의지나 힘조차 없는 상태인데 그런 그들을 옆에서 비난하는 것은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라고 지적했다.

전문의들에 따르면 우울증은 전세계적으로 5~17%의 평생 유병률을 보인다. 즉, 전 세계적으로 100명 중 5~17명은 평생 살아가면서 1번쯤은 우울증을 겪는다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남성보다는 여성이 2배가량 더 우울증을 경험하고 이러한 차이는 생물학적 원인과 개인적인 특성, 사회문화적인 요인이 작용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남성보다는 여성 우울증이 더 부각되는 듯 보이지만, 달리 말하면 우울증 3명 중 1명은 남성이고 일반적으로 남성 8명 중 1명은 평생 우울증을 한 번쯤 겪는다고 알려져 있어 남성 우울증을 무시할 수만은 없다.

◆남녀 간 우울증 차이 신경 써야

일반적으로 남성 우울증과 여성 우울증 증상은 유사하다고 알려져 있다. 우울증 진단에 흔히 사용하는 미국 정신과 학회에서 발간되는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편람 5편(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fifth edition)에서도 우울증의 진단 기준을 연령이나 성별에 따라 따로 제공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남성과 여성은 흔히 우울증에 대해 서로 다른 증상으로 표현한다. 예를 들어 여성은 우울 증상에 대해 슬픔과 무가치감으로 표현하지만 남성은 이를 공격성이나 짜증, 적대감, 위축 등으로 표현한다. 사람에 따라 다소 다를 수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보이는 남성 우울증만의 특징은 △분노나 과민성, 공격성 △즐거운 활동이나 성생활, 직업에 대한 무관심 △공허감, 죄책감, 낮은 자존감 △알코올이나 담배, 마약, 일이나 스포츠 활동으로의 도피 △학업이나 직업에 대한 기능 및 능률저하 △가족이나 친구 등과의 대인관계 회피 △수면장애나 피곤함 △식욕 변화 △두통이나 복통, 근육통 등의 비특이적 신체증상 △삶에 대한 무가치감, 자살에 대한 몰두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특히 여성에 비해 남성은 '강해야 한다' '감정을 숨겨야 한다' '약점을 드러내면 안 된다'는 등의 남성성을 강요받는 문화권에서는 우울증과 관련된 감정적 증상보다는 분노나 짜증, 피로감이나 신체증상 등을 더 많이 나타내게 된다. 이 때문에 우울증을 발견하기도, 치료로 연결되기도 더 힘들다. 일반적으로 치료되지 않은 우울증은 가정과 직장에서의 불화 및 기능 저하, 대인관계의 문제를 보일 수 있고 종종 자살의 위험까지 연결될 수 있다.

가벼운 우울증은 스트레스 관리와 지지적 상담치료로도 이르면 며칠, 길어도 몇 주내에 치료될 수 있다. 그러나 빈번한 자살사고를 동반한 중등도 이상의 우울증은 병원 등에서의 전문가 치료가 필요하다. 치료 방법으로는 약물치료와 비약물치료가 있고, 어느 한 가지 방법이 절대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꾸준히 약만 잘 먹어도 우울증의 50~70%는 시간이 흐르면서 치료가 된다고 알려져 있을 정도로 약물치료의 효과는 많이 알려져 있다. 이는 약물만의 효과라기보다는 약이 우울증으로 지쳐있는 개인에게 이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어느 정도 주기 때문이다. 더불어 정신치료나 지지치료, 인지행동치료, 가족치료 등과 같은 다양한 심리치료와 전기경련치료, 경두개자극치료 등과 같은 비약물치료도 우울증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

이 교수는 "여러 연구에서 우울증으로 인해 손실되는 사회적 비용이 상당하다는 보고는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런 만큼 남성 우울증을 가볍게 보지 않고 이를 조기에 발견해 치료까지 연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노인호기자 sun@yeongnam.com
▨도움말=이호준 계명대 동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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