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톱보다 멀티캐스팅…"그 배우도 나와서 본다"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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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7-21   |  발행일 2022-07-21 제15면   |  수정 2022-07-21 07:33
여름 극장가 새로운 흥행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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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최소영기자 thdud752@yeongnam.com

'뭉쳐야 뜬다?' 무더위의 기승과 함께 극장가의 전쟁도 치열해진 요즘, 극장에 걸린 포스터를 보면 그 자체로 압도적인 스펙터클을 자랑한다. 원톱으로도 작품 한 편을 거뜬히 책임질 다수의 배우가 패키징 된 영화가 개봉을 앞두고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티켓 파워가 있는 배우를 한데 모은 멀티캐스팅이 콘텐츠 시장의 흥행 공식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지만 팬데믹 이후 실로 오랜만에 마주한 풍경이라 반갑다. 원톱의 파워가 빠져나간 자리, 그 자리를 다수로 채우고 있는 멀티캐스팅에 대한 각계의 다양한 관점도 함께 짚어본다.

◆다수가 모여 흥행을 보장한다

"배우 한 사람당 50만명만 책임지면 최소 500만 관객이 되는 거다." 영화 '도둑들'(2012) 개봉 전 배우 김혜수가 한 말이다. 그를 포함해 김윤석, 이정재, 전지현, 임달화, 김해숙 등이 출연한 '도둑들'은 결국 모든 이의 예상을 뛰어넘어 개봉 22일 만에 1천만 관객을 동원했다. 흥행요인이야 많다. '타짜' '범죄의 재구성' 등을 통해 보여준 최동훈 감독의 탁월한 장르적 감각과 비슷한 비중으로 다양한 캐릭터를 다 살려낸 플롯 그리고 폭염도 한몫했다. 감독에 대한 배우들의 신뢰가 전제됐기에 가능했던 결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둑들'은 좀체 현실화하기 힘든 캐스팅 구성이었다. 감독들에게 여전히 캐스팅의 벽은 높고, 이런 캐스팅이 가능한 감독은 손에 꼽을 정도다.

이제 멀티캐스팅은 성수기를 겨냥한 텐트폴 영화의 필수적이고 안정적인 장치로 통한다. 제작사는 좀 더 수월하게 투자처를 확보할 수 있고, 배우 입장에선 일정 수준 이상의 흥행이 담보되니 실보다 득이 많다. 설령 흥행에 실패하더라도 그에 따른 부담을 나눌 수 있다. 올여름 성수기를 겨냥한 개봉작들에서도 이런 트렌드가 읽힌다.


최동훈 감독 '외계+인'
류준열·김우빈·김태리·소지섭
한재림 감독 '비상선언'
송강호·이병헌·전도연·김남길

참신한 기획·탄탄한 이야기 바탕
주연급 조연 '떼'로 나와 시너지
더러 캐릭터 균형 깨져 '고배'도



최동훈 감독이 7년 만에 내놓은 신작 '외계+인'에는 류준열, 김우빈, 김태리, 소지섭, 염정아, 조우진, 김의성 등 화제성과 신뢰도를 겸비한 배우가 대거 포진해 있다. 한재림 감독의 '비상선언'은 송강호, 이병헌, 전도연, 김남길, 임시완 등 국내를 대표하는 톱 배우로 진용을 짰다. 영화 '한산: 용의 출현' 역시 박해일, 변요한, 안성기, 손현주, 김성규, 김성균, 김향기 등 세대를 뛰어넘는 넓은 스펙트럼의 배우로 구성됐다. 전작 '명량'에 이어 김한민 감독의 탁월한 캐스팅 혜안이 또 한 번 증명된 셈이다. 영화 '헌트'도 이정재, 정우성과 함께 전혜진, 허성태, 고윤정, 김종수, 정만식 등의 개성파 배우가 존재감을 드러낸다.

실상 주·조연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멀티캐스팅으로 놓고 본다면 올해 영화의 키워드라 해도 무리가 아닐 듯싶다. 이런 흐름은 OTT 콘텐츠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디즈니+ '무빙'에는 류승룡, 한효주, 조인성, 차태현, 김성균, 류승범 등이, 넷플릭스 '길복순'에는 전도연, 설경구, 구교환, 이솜 등이 출연해 예측불허의 시너지를 예고한다.

◆새로운 기획·다양한 캐릭터를 원하는 시대

멀티캐스팅 붐에 대해 한 영화관계자는 "완벽한 스타가 사라지면서 따라오는 필수 불가결의 선택"이라고 말한다. "과거처럼 원톱 배우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가 줄어들었고, 관객은 '그 배우'라서가 아니라 '그 배우도 나와서' 영화를 선택한다"고 했다. 명품 조연의 시대도 지났다. 이젠 주연급 조연이란 표현이 더 적확할 만큼 멀티캐스팅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도 바로 이들 주연급 조연이다.

투자자들은 캐릭터가 재밌고 독특한가가 때론 전체적인 이야기보다 더 큰 기준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우려의 시선이 없는 건 아니다. 롯데엔터테인먼트의 한 관계자는 "기획단계부터 메인 캐릭터 외의 배우를 모두 내세우다 보니, 전체적으로 개런티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역할 모두가 필요 이상으로 중요해지면서 더러 균형이 깨지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한다.

비중 있는 배우가 많아질수록 제작사의 부담이 커지는 건 당연하다. 1부와 2부를 동시에 촬영한 '외계+인'은 제작비로 400억원, '한산'은 310억원, '비상선언'은 260억원, '헌트'는 200억원 이상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진다. 스타 캐스팅이 투자를 받는 데 유리하다는 걸 감안하면 결국 캐스팅이 작품의 사이즈를 결정하는 순환고리를 형성한 것이다.

물론 멀티캐스팅이 반드시 흥행을 담보하진 않는다. 과거의 예를 보더라도 김윤석, 이병헌, 고수 등이 출연한 '남한산성', 정우성, 강동원, 한효주 등이 출연한 '인랑' 그리고 최근의 '브로커' 흥행 참패는 멀티캐스팅이 성공을 위한 충분조건이 아님을 보여준다. 참신한 기획과 탄탄한 이야기가 먼저고, 그걸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캐릭터가 구현돼야 함을 역설한다. 한 영화 관계자는 "배우가 작품을 결정하기까지는 감독, 시나리오, 제작사 등의 변수가 있다. 최근엔 캐릭터의 변별력도 배우들의 관심을 유도하는 요소로 자리하고 있는 추세다. 일련의 흥행작을 볼 때 관객 역시 사이즈에 반응한다기보다 새로운 기획과 캐릭터에 대한 요구를 더 많이 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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