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변종현 편집국 부국장 |
라면이나 짜장면 이야기는 아니다. 1970년대 초등교실에 나돌던 난센스 퀴즈 중 '면은 면인데 못 먹는 면은?'이란 게 있다. 정답은 알다시피 '바다가 육지라면'이다. 못 먹는 면이 어디 그뿐이랴마는 아마도 1970년 조미미가 발표한 동명의 트로트 곡 영향으로 보인다. 이후 시대가 바뀌면서 '산타가 가장 싫어하는 면은? 울면!' 등으로 진화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새 육지에, 특히 지방에 '울면'이 수두룩하다는 얘기가 끊이지 않는다. 군(郡)에 딸린 하부 행정구역인 면(面) 지역이 인구절벽시대 소멸 위기에 처하면서 울상이라는 것. 지자체마다 온갖 수단을 동원하고 있지만 사람 보기 힘든 마을이 늘고 있다.
경북 군위군 고로면은 2021년 삼국유사면으로 이름을 바꿨다. 고려 승려 일연이 이곳 인각사에서 삼국유사를 저술한 점에 착안했다. 삼국유사면에는 인각사 외에도 일연공원·학소대·화산산성 등의 관광지가 있다. 그해 경주에서는 양북면을 문무대왕면으로 개명했다. 문무대왕은 신라 30대 왕으로 한반도 첫 통일국가 왕이다. 이곳에는 문무대왕 수중릉을 비롯해 기림사, 감은사지 3층석탑 등의 유적지가 있다. 한국수력원자력 본사도 이곳에 자리 잡았다. 상주시 사벌면은 2020년 사벌국면으로 변경됐다. 사벌국은 상주 최초 성읍국가로 상주 역사의 시작이라 하겠다. 100년간 써온 이름을 바꾸는 일이었지만 이들 세 지역 주민은 개명에 압도적 지지를 보냈다. 왜일까.
앞서 인천 남구가 2018년 구명(區名)을 '미추홀구'로 바꾸자 전국 지자체가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미추홀은 백제 시조 온조왕의 형인 비류가 인천 문학산 일대에 정착하면서 붙인 지명이다. 생소했지만 구명은 브랜드가 됐다. 동구·서구·남구·북구 등 대도시에는 하나같이 방위 개념의 구가 존재한다. 지역 고유의 정체성과는 거리가 먼 행정편의주의적 네이밍이 아닐 수 없다. 미추홀구 개명을 보면서 대구에서도 중구를 '국채보상구' 등으로 바꾸자는 주장이 나왔지만, 보수적 성향 때문이었을까 반향은 적었다. 지역 가치 재창조가 대구에서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하는 사이 경북에선 눈여겨볼 개명 작업이 이어지고 있었다.
읍·면 이름이야 그만한 사연 하나씩 갖기 마련이지만 지명만 듣고선 어떤 스토리가 있는지 알 수 없다. 심지어 그게 그거여서 차별성도 없다. 한자 지명인 탓도 있겠지만 지역 고유의 가치가 이름에 잘 드러나지 않은 까닭이다. 삼국유사면·문무대왕면·사벌국면은 일단 면 명칭만으로도 귀에 쏙 들어오지만(감탄할 만큼 이색적이다) 역사적 정체성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도 눈에 확 들어온다. 지명을 브랜드화하는 전략은 2015년 고령군 고령읍이 대가야읍으로 개칭되면서 크게 주목받았다. 이외 경북에는 울진 금강송면, 청송 주왕산면, 포항 제철동, 경주 불국동 등 지역 정체성을 살린 행정지명이 더러 있다.
기업 영업은 크게 꿀벌전략과 거미전략으로 나뉜다. 전자가 소비자를 찾아 돌아다니는 발품 전략이라면 후자는 거미줄처럼 상점을 차려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전략이다. 경북 읍·면의 명칭 변경은 외지 관광객(혹은 귀농귀촌 인구)을 유인하는 거미전략에 해당한다. 23개 시·군마다 문무대왕면 같은 읍·면 이름 하나 정도 갖는다면 경북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더 끌 수 있지 않을까. 단, 상점을 쌈박하게 꾸민 후엔 걸맞은 콘텐츠를 채우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지난 7월21일은 문무대왕의 날이었다. 문무대왕면의 콘텐츠라 하겠다.
변종현 편집국 부국장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