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정의 소소한 패션 히스토리] 미래주의(Futurism) 패션 ①

  • 한희정 계명대 패션디자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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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8-19   |  발행일 2022-08-19 제37면   |  수정 2022-08-19 08:31
금속·플라스틱·종이 의상…옷=바느질 틀을 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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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자코모 발라의 미래주의 정장 디자인.
2000년대 이후 스마트 의류(smart wear), AI(Artificial Intelligence·인공지능), VR(Virtual Reality·가상현실), 그리고 가상의 세계와 현실 세계를 합한 의미인 메타버스(Metaverse) 등 다소 낯선 단어들이 패션 분야에 스며들고 있다. 디지털, 온라인, 인터넷 등 IT의 발달과 함께 빨라진 유행 주기와 소비자 변화로 패션산업은 가까운 미래조차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예측하기 어렵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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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미래주의 감성의 드레스. www.wright2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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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코 라반느의 우주시대 의상. www.escamastudio.com
미래의 패션은 어떠한 모습일까? 미래지향적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20세기 초 여성의 코르셋 해방, 1960년대 미니스커트, 2020년대 남성 레이스 소재 셔츠 등이 변화하는 사회문화적 모습과 앞으로 지향해야 할 미래 패션의 예일 것이다. 반면 이와 좀 다른 관점으로 미래의 이미지가 그려지는 패션을 생각해보면, 은빛 금속 소재의 의상을 떠올릴 수 있다. 2000년대 들어 지속적으로 볼 수 있는 지나간 시절의 모습을 그린 레트로, 뉴트로의 모습은 모니터와 스크린의 빛바래고 흐린 화면 속에서 1900년대 중후반의 모습을 다채로운 색감으로 나타낸다. 반면에 미래의 모습은 은빛 광택과 무채색, 중성적인 색으로 그려진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이는 '미래'의 모습에서 빠질 수 없는 우주선, 가상, 새로운 기술, 그리고 이들의 소재인 금속의 차가움에서 느껴지는 이미지와 함께 앞으로 어떻게 변화될지 모르는 불투명함의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패션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변화의 모습과 산업적 특성이 맞물린 것으로, 미래주의적 패션은 우리가 머무르고 있는 시대에서 바라보는 미래의 모습이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미래주의 패션, 영어단어로 퓨처리즘 패션(Futurism Fashion)은 20세기 초반부터 현재까지 각각의 시점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졌다. 미래주의 패션은 단순히 '미래에는 어떠한 패션을 입을 것'이라는 일차적 사고보다, 이제까지 생각하지 못한 급격한 변화의 모습과 이를 바라보는 디자이너의 가치, 그리고 실험적 창작을 시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패션에서 미래주의의 모습은 무엇인가 크고 새로운, 앞서나가는 듯한 변화가 있을 때 더욱 대두되었다. 패션과 별도로 미래주의는 20세기 초 이탈리아와 러시아를 중심으로 유럽 전역에 퍼진 예술 운동으로 기계의 역동성, 속도감, 에너지, 변화, 불안감이 예술 작품으로 표현된 것이다. 이러한 표현은 19세기 말부터 벌어진 2차 산업혁명을 통한 진보적인 과학기술의 발달로 전기와 대량생산이 가능하게 되어, 사람들은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변화와 기계 움직임의 역동성과 속도 등을 '아름다움'으로 보게 되었다.


20C초 내다 본 미래 패션
우주선·가상 현실…은빛 광택·무채색·중성적 色
평범한 정장, 높은 채도 색상 조합·과감한 디자인
역동성·속도·에너지·불안감 예술작품으로 표현
60년대 과감하고 새로운 소재…현재까지도 영향



당시 이탈리아의 대표적 미래주의 화가로 알려진 자코모 발라(Giacomo Balla)는 자신의 회화 작품에서 그린 빛의 움직임과 속도감을 1914년 미래 정장((Future Suits) 디자인으로도 나타냈다. 그는 당시 남성 정장의 모습을 특별한 개성이 없는 평범하고 구식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강한 비대칭적 선의 움직임이 보이는 여밈과 밑단의 디자인과 당시 남성복에는 사용하지 않았던 노랑·초록·빨강 등 높은 채도의 색상 조합을 통한 과감하고 역동적 디자인으로 미래주의 예술의 미학적 가치를 패션으로 표현하였다.

이후 미래주의 패션은 20세기 중후반 미국과 소련의 우주 경쟁에서 1957년 세계 최초 인공위성인 소련의 스푸트니크 발사에 이은 1960년대 중반 미국의 로켓 및 유인 우주선 발사 성공으로 미국이 앞서나가게 되면서 60년대의 미래주의 패션은 크게 대두되었다. 앙드레 꾸레쥬, 피에르 가르뎅, 파코 라반느 등 패션 디자이너는 당시 새로운 소재 기술의 개발 속에서 일반적인 의류의 소재가 아닌 PVC, 금속, 플라스틱 등을 사용하여 우주 시대를 그린 미래주의 패션을 제시하였다. 60년대 미래주의적 패션은 당시 패션 스타일을 지배한 미니멀리즘 패션, 즉 단순한 실루엣과 조이지 않는 허리선, 미니스커트의 전체적 형태에 새로운 소재와 독창적 디자인 선을 반영하여 동시대적 특징과 혁신적 독창성으로 구현되었다. 이러한 우주시대 패션은 이전까지 전통적으로 사용된 틀을 깨고 새로운 미래 시대의 가치와 모습을 제시한 것이었다. 이는 대중을 이끄는 선도적 패션으로 60년대 이를 처음 보게 된 대중들의 느낌은 흡사 현재 우리가 가상세계를 처음 경험했을 때와 유사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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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정 (계명대 패션디자인과 교수)
60년대 미래주의적 패션은 단순히 미래 이미지를 담은 것이 아니라 전형적인 패션의 소재·형태·개념을 확장한 것으로, 지금 우리 사회가 강조하고 있는 사고의 전환과 창조적 혁신을 포함하고 있다. 1980년대 이후까지 미래주의적 패션을 창작한 파코 라반느의 금속·플라스틱·종이로 만든 의상은 패션-옷-바느질이라는 공식 개념을 깬 것이며, 1966년 컬렉션에서 유색 인종 모델을 수용하여 관습을 깨뜨렸다. 이처럼 미래지향적 패션을 제시한 60년대 디자이너들의 작품과 아이디어는 대중에게 변화하는 시대의 모습을 제시하고 이끄는 선구자적 역할을 한 것으로, 이들은 2020년대 현재까지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계명대 패션디자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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