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우광훈의 장정일 傳] (13) 장정일 형과 함께 제천에 가다 (하)

  • 우광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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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8-19  |  수정 2022-09-02 07:42  |  발행일 2022-08-19 제15면
형과 함께 판화작업실 방문, 짧은 시간 긴 여운

[소설가 우광훈의 장정일 傳] (13) 장정일 형과 함께 제천에 가다 (하)
왼쪽부터 판화가 이철수의 저서 '내일이 와준다면 그건 축복이지' '당신이 있어 고맙습니다' '자고 깨어나면 늘 아침' '새도 무게가 있습니다'.

제천시 백운면 평동마을.

38번 국도를 빠져나와 좁다란 마을길로 접어드니 드넓은 논밭을 배경으로 고즈넉한 시골 풍경이 멋스럽게 펼쳐졌다. 논두렁 옆 공터에 주차한 우린 판화가 이철수 선생님의 안내를 받으며 문패가 아름다운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마당에는 녹색의 잔디가 적당한 높이로 깔려 있었고, 진돗개인 듯해 보이는 개 두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우린 처마 아래에 서서 평화로운 정원 풍경을 감상한 뒤 선생님의 작업실로 향했다.

실내에는 다양한 판화작품들이 족자 형태로 걸려 있었다. 판화가의 작업실은 처음이어서 그런지 모든 것이 낯설고 신비로웠다. 길고 널찍한 책상 위에는 달력용 목판화와 아직 표구되지 않은 작품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우린 그곳에서 잠시 담소를 나누었다. 선생님은 오전 내내 내년 달력에 쓸 작품을 고르느라 바빴다고 했고, '문학동네'와의 연재는 끝이 났으며, 요즘은 월간 '좋은생각'에 판화와 산문을 연재 중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문화교양월간지의 종류가 과거에 비해 많이 다양해졌지만 현재 출판시장이 크게 위축되어 '샘터'와도 같은 위기는 당분간 지속될 것 같다며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화제가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이야기로 이어질 때쯤 저녁 준비가 다 됐다는 연락이 왔다. 우린 잔디가 매력적인 마당을 지나 부엌으로 갔다. 식탁 위엔 시골밥상에서 흔히 볼 수 있을 채소 위주의 식단이 소박하게 차려져 있었다. "이 모든 게 다 저이가 직접 재배한 것이에요"라는 사모님의 자랑에 흐뭇해 하시는 선생님의 미소가 너무나 아름다웠다.

이철수 선생 찾아가 작품 구매한 형
"예술품 구매는 돈하고 상관없어요
처음이 어렵지 해보면 빠져들 거예요"

식사를 마치고 우린 다시 선생님의 작업실로 갔다. 그리고 형이 구입하고자 하는 판화작품을 드디어 만날 수 있었다. 선생님은 동일한 작품 중 제일 마지막 번호인 40번을 형에게 보여주었다. 형은 왜 40장밖에 안 찍었느냐고 물었고(보통 판화는 60장 정도 찍는다) 선생님은 그 이상 작품에서는 직선의 효과가 많이 떨어져 그런 결정을 내렸다고 했다. 덧붙여 선생님은 판화를 구입하는 사람은 저마다 선호하는 번호가 있다고 했다. 어떤 이는 1번만을 고집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마지막 번, 또 어떤 이는 7번만을 고집하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형이 특별히 원하는 번호가 없다면 마지막 번을 주고 싶다고 했다. 형은 흔쾌히 동의했다. 선생님은 조심스레 작품을 말아 원통에 넣으며, 이 작품은 며칠 전 K소설가가 직접 와서 사 갔으며, 마이크로소프트사도 몇 달 전에 구입해 갔다고 했다. 형은 표구가 자못 걱정스러운 듯 선생님께 직접 자문했고, 선생님은 일반 동양화를 표구하듯 가볍게 하면 된다고 표구에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잠시 후, 사모님과 나의 아내가 다과가 놓인 쟁반을 들고 작업실로 들어왔다. 우린 차를 마시며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전시될 예정인 선생님의 판화작품들을 감상했다. 이어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발전적인 방향(지역민과 함께 하는 영화제, 연주 공연팀의 강화 등)에 대한 진솔한 대화가 이어졌고, 마지막으로 판화 제작에 관한 선생님의 설명을 들은 뒤 우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은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가로등이 고장 난 상태라 우린 핸드폰 라이트에 의지한 채 주차한 곳까지 걸어야만 했다.

선생님과 작별 인사를 나눈 후, 우리는 곧장 대구를 향해 출발했다. 단양휴게소가 가까워질 때쯤 "전 왜 판화 구입을 망설였을까요? 좀 전 형이 구입할 때 같이 구입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하고 용기 내어 물었다. 그러자 형이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광훈 씨, 미술 작품 사는 거, 그거 돈하고 상관없어요. 우리 돈 생기면 뭐부터 하려고 하죠? 집 장만, 차 구입, 그렇게 선순위를 세워 나가죠. 보통 사람들은 다 그래요. 미술 작품 구입, 그거 돈의 여유를 떠나 미술에 빠져야만 할 수 있는 거예요. 난 화랑 가는 거, 미술 작품 사는 거, 그거 너무 좋아요. 행복해요. 미술 작품 구입 처음이 어렵지 한번 해보면 빠지기 시작할 거예요. 다음에 서울국제판화전 열리면 나하고 같이 가요. 한 100만원 정도 들고 가면 마음에 드는 작품 살 수 있을 거예요."

금호JC를 지나자, 드디어 북대구 요금소가 보이기 시작했다. 신천대로를 빠져나와 수성교 근처에서 형을 내려준 다음 다시 강촌마을로 향했다. 굳게 닫힌 아파트의 현관문을 열자, 극도의 피로가 밀려들었다. 아내는 여행의 여운이 아직 가시지 않은 듯 여전히 들떠 있었고, 그런 좋은 추억을 만들어 준 형에게 난 다시 한번 고마움을 느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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