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이상한 비대위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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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8-25   |  발행일 2022-08-25 제23면   |  수정 2022-08-25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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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경 정치부장

후반기 국회가 시작된 지 석 달, 여야는 이 가운데 절반을 넘는 53일을 상임위 배분 등을 다투느라 개점 휴업했다. 민생 관련 안건은 두 건 겨우 처리했다. 유류세 인하 범위를 확대하고, 직장인 식대 비과세 한도를 늘렸다.

정작 여야가 힘을 쏟은 것은 당내 권력투쟁이었다. 그러느라 9월 정기 국정 감사가 코 앞인데 여야 3당이 일제히 '비상 상황'이다.

'비상'이 정당의 뉴노멀이 된 듯한 지금의 한국 정치지만, 국민의힘의 비상은 특히 희한하다. 야당은 선거에라도 졌지 여당은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 내리 3번의 선거에서 이기고도 새 정부 출범 100일도 안 돼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에 들어갔다.

비대위는 말 그대로 당 지도부가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없는 특수한 상황에서 설치되는 임시기구다. 하지만 많은 경우 당의 구성원이나 정책과 같은 본질적인 것은 그대로인 채 개혁과 쇄신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비대위를 출범시키곤 한다. 선거 참패나 지지율 하락이 원인으로 꼽히지만, 본질에서는 공천권이 걸린 당권 장악을 위한 수단에 더 가까운 것도 사실이다. "정당의 기능은 제대로 못 하면서 국고보조금을 받으며 좀비처럼 비대위 체제만 반복한다"는 지적에 반박 불가한 이유다.

세간의 유행어가 된 양의 머리를 내걸고 개고기를 파는 양두구육이 멀리 있지 않다. 이준석만 속은 것이 아니다.

한길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7명은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제 역할을 못 한다고 응답했다. 민생은 모르쇠요 권력 투쟁에만 몰두한 정당에 매긴 성적치고는 후하다.

정치가 제 역할을 못 하니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누가 당의 주도권을 잡을 것이냐를 놓고 싸우는 동안 시급한 민생 의제에 대한 논의와 해결은 난망이다.

소비자 물가는 올해 2분기 기준으로 1998년 이후 24년 만에 최고치(5.4%)를 기록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실업률을 더해 산출하는 경제고통지수(9.2)도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인스타그램에 '무지출' '무지출 챌린지' '무지출 도전'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을 올리며 안 쓰고 버티는 짠 내 나는 '소비 단식'도 해보지만, 답은 없다. 2분기 가계 빚이 1천869조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한 것은 예상된 결과다.

설상가상 환율은 13년 만에 가장 많이 올랐고, 소비 투자 위축으로 경제 성장률은 떨어졌다. 수출, 경상수지, 투자 모든 수치가 일관되게 미래의 더 큰 경제적 고통을 예고하고 있는 상황이다.

'과학방역'이라 쓰고 '각자도생'이라 읽는 코로나19 대책은 인구 대비 확진자 수 전 세계 1위를 기록하며 10~11월의 정점을 앞두고 있다. 여기에 가뭄, 산불, 폭염, 폭우 등 심각해진 기후 위기는 또 어떤가. 정작 비상 상황인 것은 정치가 외면한 민생이다.

갑자기 폭우가 퍼붓더라도 반지하의 삶이 안전하도록, 아프고 가난한 세 모녀가 충분한 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보육원에서 갓 나온 대학생이 미래의 꿈을 포기하지 않도록 '힘'이 되고 '함께' 해야 할 그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들의 관심이 온통 쏠려있는 2024년 총선은 앞으로 1년 반 남짓 남았다. 그리 멀지도 않았다. 이러다간 그때 '진짜 비상'을 경험할 수 있다.
이은경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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