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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구 'Forest' |
한지에 먹으로 펼쳐놓은 그의 숲은 압도적이면서도 정감이 간다. 힘 있는 터치와 강약 조절, 오묘한 번짐과 그윽한 색채의 사용, 인간과 동물·물건의 등장으로 그의 숲은 익숙하면서도 낯설고, 낯익으면서도 신선하다.
우손갤러리에서 'DENSITY 숲'展을 선보이고 있는 제12회 이중섭 미술상 수상자(2000)인 강경구 작가는 숲을 감각적인 기교나 치밀한 모사로 재현하는 데 관심이 없다. 그는 자신 속의 숲을 그린다. 그러기 위해서는 숲을 유심히, 애정 깊게 관찰하는 것이 전제 조건이다. 관찰을 통해 천천히, 멈춰서서 느낀 숲에 자신만의 리듬과 감성으로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그렇게 이름도 없는 작고 하찮은 풀이나 꽃이 의미를 부여받고, 작가가 그리는 또 다른 숲이 탄생된다.
그의 숲에는 식물만이 아니라 동물도 살고 사람도 산다.
작가는 "식물과 동물의 다른 점을 모르겠다. 식물도 동물처럼 잎을 움직이고 뿌리를 엉클면서 싸운다. 숲속은 삼엄한 위계질서가 유지되는 세계"라면서 "자연의 하나인 인간도 품고 있다"고 했다.
그의 다수의 숲 작품에서는 숨은그림처럼 인간이나 동물로 보이는 존재가 불현듯 나타나 숲 속에 잠재된 신비한 이야기와 미지의 사건을 암시하며 작품의 시각적·상상적 공간을 채운다. 또한 장난스러운 깜짝선물처럼 숲속 한가운데서 소파를 맞닥뜨리기도 한다. 소파는 인간이 쓰는 물건으로 메타포적 의미를 담고 있으며 관람객에게 상상의 여지를 준다. 또한 노련하고 지나치지 않은 채색은 그의 회화에 풋풋한 생동감을 주고, 갈필과 번짐은 묵묵한 멋을 선사한다.
결국 강경구의 '숲'은 자연 속 크고 작은 온갖 생명체들이 생기 넘치는 삶의 행진을 함께하는 생명의 근원인 동시에, 누구도 알지 못하고 누구도 가 본 적 없지만 걷다 보면 우리의 운명과 마주하게 될 장소다.
작가는 "집 뒷마당의 두릅에 매료돼 그림을 그렸던 것이 계기가 돼 숲 작업으로 확장됐다"면서 "숲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인생 같다. 내 작품은 '숲을 바라볼 수 있는 창문을 만든 것'이다. 그 창문을 통해 관람객들은 나를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경구가 우손갤러리에서 처음 갖는 개인전으로,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는 이번 전시는 9월8일까지. 박주희기자 j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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