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크 人사이드] 김도은 안동 수운잡방 전통음식체험관장 "수운잡방은 고춧가루·생마늘·돈육 사용 않는 유일한 민가 조리법"

  • 양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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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9-21  |  수정 2023-11-29 15:21  |  발행일 2022-09-21 제13면

[토크 人사이드] 김도은 안동 수운잡방 전통음식체험관장 수운잡방은 고춧가루·생마늘·돈육 사용 않는 유일한 민가 조리법
김도은 수운잡방 전통음식체험관 관장이 체험관에서 수운잡방 음식의 특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도은 관장 제공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은 수백 년이 넘는 전통을 이어온 종가가 많다. 그중 광산 김씨 예안파 설원당 종가를 빼놓을 수 없다. 국내 최고(最古) 조리서인 '수운잡방'의 존재 덕분이다.

수운잡방은 탁청정 김유(1491~1555)와 손자 계암 김령(1577~1641)이 대를 이어 집필한 조리서로 지난해 8월 보물로 지정됐다. 1550년대쯤 쓰인 이 책의 제목은 '격조를 지닌 음식 문화(수운·需雲)의 여러 가지 방법(잡방·雜方)'이라는 뜻이다. 덕분에 경북도는 해외 귀빈들이 도청을 방문할 때마다, 접견 음식으로 수운잡방을 내놓고 있다. 최근 경북도청을 방문했던 주한 네덜란드 대사,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주지사 등도 이 음식을 맛보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주한 대사 부인회가 한국 전통문화를 탐방하면서 직접 조리 체험을 하고 음식 맛에 흠뻑 빠지기도 했다.

궁중이 아닌 민가의 음식 조리법이 그대로 담긴 수운잡방은 한식의 산 역사다. 김도은 수운잡방 전통음식체험관 관장을 만나 수운잡방 500년의 역사를 들어봤다.

"광산 김씨 종가서 代를 이어 집필
500년 전통 지켜온 한식의 산 역사
주류 57종, 채소절임·김치 14종 등
114종 음식 조리와 관련 내용 수록
꿩 육수를 사용한 물김치도 유일해

수운잡방은 모든 음식이 메인요리
각 그릇에 담아 하나씩 따로 내놓아
한식 세계화 목적으로 전통 음식을
외국인 입맛에 맞춰 만들어선 안돼
있는 그대로의 한식을 찾도록 해야"


▶'수운잡방'은 어떤 책인가.

"'수운잡방'은 광산 김씨 종가에서 대를 이어 집필한 조리서다. 광산 김씨 예안파 설원당 종가에서 500년 넘게 고이 간직해 왔다. 설원당 종택 주춧돌에 땅을 파고 묻어 임진왜란 등 각종 난리통을 피할 수 있었다. 2권(1책)의 표지 모두 온전하고, 종가 간인도 찍혀 있다. 사대부 남성이 집안의 요리 비법을 세세하게 기록한 조리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문과에 급제한 선비가 쓴 조리서로는 '수운잡방'이 유일하다. 오늘날 와인이나 플레인 요거트, 안동 찜닭 등과 유사한 요리의 제조법이 담긴 것도 특색이다.

수운잡방보다 80년 정도 앞선 것으로 알려진 산가요록(山家要錄)은 궁중 어의(전순의)의 생활기록이다. 민간의 음식 조리 기록을 담은 수운잡방과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수운잡방에는 어떤 음식이 소개돼 있나.

"총 114종의 음식 조리와 관련된 내용을 수록하고 있다. 김유 선생이 지은 앞부분에 86항, 김영 선생이 지은 뒷부분에 36항 등 총 122항으로 구성돼 있다. 항목별로는 주류가 57종으로 가장 많고, 채소 절임과 김치류 14종, 장류 9종, 조과(과자류)·당류(사탕류) 5종, 찬물류와 탕류 각 6종, 두부 1종, 타락 1종, 면류 2종 등이다. 오천양법(烏川釀法·안동 와룡면 오천리의 술 빚는 법)을 비롯해 당시 안동지역 양반가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던 법이 포함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수운잡방' 음식의 특징은.

"고춧가루·생마늘을 쓰지 않는다. 돼지고기도 사용하지 않는다. 사찰음식을 제외하고 한식에서 고춧가루·생마늘을 쓰지 않는 것은 유일하다. 수운잡방은 상대적으로 사찰음식에 비해 잘 알려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수운잡방의 음식들은 슬로푸드(slow-food) 또는 식치(食治·좋은 음식으로 건강을 다스려 전염병 등을 예방) 음식이다."

[토크 人사이드] 김도은 안동 수운잡방 전통음식체험관장 수운잡방은 고춧가루·생마늘·돈육 사용 않는 유일한 민가 조리법
수운잡방 상차림. 〈김도은 관장 제공〉

▶돼지고기를 사용하지 않으면, 문화·종교적 이유로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외국인들도 거부감 없이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무슬림도 거리낌 없이 먹을 수 있다. 최근 경북도청을 방문했던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주지사가 그랬다. 돼지고기가 나오지 않으니 종교적 부담 없이 맛있게 먹었다. 수운잡방은 봉제사접빈객(奉祭祀接賓客·제사를 받들어 모시고 손님을 대접하는 문화)을 잘 보여주는 자료다. 그중에서도 손님에게 최고의 접대를 할 수 있는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3월 주한대사 부인회나 최근 주한 네덜란드 대사를 비롯해 경북도청을 방문한 외국 정부 관계자들에게 자신 있게 음식을 내놓을 수 있는 건 '최고의 접대를 위한 손님맞이 음식'이라는 전통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냉면을 좋아하는데, 지금까지 먹어 본 그 어떤 냉면 육수보다 더 훌륭했던 동치미가 가장 궁금하다.

"수운잡방에선 '동치미'가 아닌 그저 '김치'다. 꿩 육수로 만든 김치."

▶지금까지 먹어 본 음식 중에선 가장 맛있어서 그렇다.

"이해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있던 익숙한 음식과 (새롭게 접해 본 음식을) 연결하려는 경향이 있다. 꿩 냉면 육수랑 흡사할 수는 있으나 수운잡방의 물김치는 꿩 육수를 사용해 담그는 김치다. 500년간 이어져 온 전통 방식으로 김치를 담근다. 꿩 육수를 사용해 물김치를 담그는 건 수운잡방이 유일하다."

▶2번 먹어본 수운잡방 음식은 기존의 한식과는 조금 달랐다. 보통 한식이라고 하면, 한 상을 가득 채워 나오는 거로 알고 있었는데 수운잡방은 그렇지 않았다. 모든 음식이 하나씩 따로 나오는 게 인상 깊었다.

"우리 민족은 1인 1상의 전통이 있었다.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의 상차림은 잔칫상 정도를 제외하면 없었다. 모두가 모여 앉아서 먹는 상차림(둘레상)은 일제강점기 이후에 보급됐다. 일제가 우리 전통의 밥상 문화를 말살하기 위해 1인 1상을 법으로 제한했다. 1인상으로 나가는 것이 잘못됐다고 알고 있는 게 오히려 잘못된 것이라는 의미다. 일제 잔재를 부끄럽게 생각하면서 이를 개선하지 않는 것도 상당히 잘못됐다. 수운잡방에서 각 음식을 하나씩 따로 식탁에 내놓는 것은 우리 민족의 전통이다."

▶애피타이저부터 메인 요리까지 모든 것을 각각의 그릇에 담아 내놓는 게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

"수운잡방은 내놓는 모든 음식이 '메인 요리'라고 할 수 있다. 가장 먼저 나가는 '타락'을 이야기하면, 현대식 플레인 요거트다. 맛도, 모양도 똑같다. 수운잡방에 쓰인 타락의 조리법을 보면, 과거 신라의 양(羊) 사육 등도 유추해 볼 수 있다. 이런 유서 깊은 음식이 가장 먼저 나온다고 애피타이저라고 할 수 있을까. 내놓은 모든 음식을 메인 요리라고 하는 건 이 때문이다."

▶한식 세계화에 관심이 높다. 한식 세계화를 위한 방법이 있다면.

"한식 세계화를 목적으로 음식을 개발해서는 결코 안 된다. 그동안 한식 세계화를 이유로 쓸데없는 짓을 저지른 사람들이 너무 많다. 김치 세계화를 위해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김치 셔벗'을 만들었다. 한국인도 먹지 못하는 음식을 만들어놓고, 한식 세계화를 논하는 게 말이나 되나. 그렇게 해서는 절대 안 된다.

우리 전통 음식을 외국인 입맛에 맞도록 개발하는 것은 세계화가 아니다. 외국인들이 우리 한식을 있는 그대로 찾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한식 세계화'다. 그 길로 가야 한다."

▶수운잡방 전통을 계승하는 종부로서 앞으로의 전통 음식 발전 방안에 대해서도 한마디 해 달라.

"한식 세계화나 전통주 보전 등이 최근 우후죽순처럼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 음식이나 전통주에 집중하는 것보다 '몇 백 년'이라고 홍보하는 데 치중하는 것 같아서 아쉽다.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데 어떻게 몇 백 년 전통의 음식·술이 나올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전통은 마음 편하게 이어갈 수 있어야 한다. 전통을 이어가는 것이 무언가를 위한 수단이 돼선 안 된다. 전통 음식·술을 개발하고 이어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실 그대로에 집중해야 한다. 종가의 역사가 음식 조리의 역사와 같지 않다. 전통을 제대로 지키며 이어가는 사람(종가)이 보호받을 수 있는 방안도 찾아야 한다."

양승진기자 promotion7@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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