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핫 토픽] '국민의 일꾼' 젤렌스키

  • 박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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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9-23 06:50  |  수정 2022-09-23 06:58  |  발행일 2022-09-23 제22면

넷플릭스에 한 백인 남성이 서류 가방을 들고 자전거를 타는 모습의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국민의 일꾼'이라는 제목의 드라마다. 당연히 미국 작품이겠거니 하고 재생했는데 키릴 문자가 나왔다. 또 포스터로 작게 보이던 그 백인 남성, 낯익었다. 그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니아 대통령이었다.

대통령이 되기 전 젤렌스키는 코미디언이자 방송 프로듀서였다. 예능 프로그램을 기획하거나 주연 배우가 돼 드라마에 출연했다. '국민의 일꾼'도 그 일환이다. '국민의 일꾼'은 평범한 우크라이나의 역사 교사 바실 페트로비치가 대통령이 돼 부정부패를 척결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 시트콤이다. 바샤(바실 페트로비치의 애칭)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우크라니아를 EU에도 가입시키고 인공위성을 쏘아 올린다.

바샤와 젤렌스키의 닮은 점은 또 있다. 대통령 취임 전까지 정치에 경험이 없다. 사실상 '동명이인'인 둘은 자신의 정도(正道)를 따른다. 우크라니아와 러시아 사이의 무력갈등이 시작될 때 우크라이나의 정치인과 재벌은 전용기를 타고 우크라이나를 떠났다. 젤렌스키는 우크라이나에 남아 국민에게 용기를 줬다. 드라마에서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아마 같은 모습이었을 것이라 예상한다. 지금의 우크라이나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세상이다.

제20대 대통령선거에서 당시 이재명 후보가 우크라이나 사태를 들며 "초보 정치인이 대통령으로 당선 돼서"라고 말했다. 젤렌스키는 화상으로 대한민국 국회에서 연설을 했다. 모든 것이 논란을 일으켰다. 타국은 의회 본회의장에서, 한국은 국회 도서관 대강당에서 진행됐다. 참석자도 적었고 그나마 참석한 이들도 졸거나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는 등 결례를 범했다. 코미디보다 더 코미디 같은 세상이다.

바샤는 취임사로 "어린아이의 눈을 보았을 때 부끄럽지 않도록 행동해야 한다는 것, 이것이 내가 아는 전부다. 아이의 부모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하는 약속"이라고 말했다. 현실 대통령 젤렌스키는 2019년 취임하며 "나는 내 초상화를 여러분들 사무실에 걸기를 원하지 않는다. 대통령은 우상 그리고 초상으로 삼는 대상이 아니다. 대신 여러분의 자식들 사진을 걸어놓고, 매사 결정에 앞서 바라봐라"고 외쳤다.

정치와 국제관계를 떠나서 국내 정치인 중에는 젤렌스키보다 의인인 이들이 있을까. 여야 모두 당권 문제로 혼란스럽다. 대통령의 측근과 당 대표가 정쟁을 일으킨 여당, 당 대표의 불법행위 의혹으로 시끄러운 야당. 그들은 국민을 위하는 것인지 당권을 위하는 것인지 헷갈린다. 바샤와 젤렌스키의 취임사를 다시 되뇐다.
박준상기자 junsang@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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