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아, 거스 형!

  • 양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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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9-29  |  수정 2022-09-29 07:38  |  발행일 2022-09-29 제8면

우리 농업은 갈 길을 잃었다. 쌀값은 '껌값'보다 못해졌다. 기후 변화는 앞으로 농업 위기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농업 대전환은 시대적 과제다.


암담한 현실은 20여 년 전 한국 축구를 보는 것 같다. 지휘봉을 잡은 불세출의 스타는 월드컵 본선 기간 중도 경질됐다. '아시아의 호랑이'는 '종이호랑이'로 전락했다. 안방에서 열릴 월드컵이 코 앞인데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긴급 수혈된 소방수는 불과 얼마 전 상대 벤치에 앉아 '오대영(5對0)'의 굴욕을 안겨줬던 인물이었다. 거스 히딩크. 반만년 역사에 그만큼 우리를 열광시킨 벽안의 외국인이 있었으랴.
그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어도 자신의 길을 갔다. '오대영 감독'이라는 비난에도 굴하지 않았다. 한국 축구의 부족한 요소를 정확히 짚었고 장점은 극대화 했다. 그 결과는 우리가 아는 대로다.


농도(農道) 경북에도 '거스 히딩크' 영입이 시급하다. 성공은 보장되지 않을 것이다. 뾰족한 수도 없다.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이다. 다행인 건 도백(道伯)이 '배움'의 자세로 네덜란드를 찾았다는 점이다.


네덜란드는 17세기부터 농작물 생산·소비 구조를 정립했다고 한다. 농민과 도시민은 각각 생산, 소비에만 집중했다. 작물의 원거리 이동은 유통·물류를 성장시켰다.


소비처가 있으니 농가 규모는 커졌다. 시장 자율성은 최대한 보장됐다. 대신 정부는 전·후방에서 기술혁신과 토지개혁을 지원했다.


이 같은 구조는 수백년 이어졌다. 농가는 이제 규모화를 이뤘다. 스마트 농법 등 첨단 기술도 도입했다. 덕분에 우리 국토 면적 41%(41만534㎢), 인구 33%(1천712만명)에도 네덜란드는 세계 최대 농업생산국 지위를 유지 중이다.


'세상이 왜 이래'라는 물음에 (소크라)테스형은 아무 말이 없었다. 하지만 거스(히딩크)형의 나라는 경북 농업이 나갈 방향을 분명히 던져줬다. 우리와 다른 점은 맞추면 된다. 배울 땐 더 과감해야 한다.


농업 대전환은 식량 주권 확보뿐 아니라 국민소득 5만불 시대를 열 열쇠다. 지방소멸 위기 극복의 해답도 된다. 일거양득이다. 여러 이유로 16강 이상의 성적이 필요했던 20년 전과 같다.
한국과 네덜란드 사이에는 거스(히딩크)형 외에도 벨테브레(박연)도, 하멜도 있었다. 좋은 기억만 있는 오랜 인연의 땅이다. 그곳에서 보고 들은 자양분이 경북 농업 대전환의 열매가 될 날이 멀지 않으리라.
양승진 기자<경북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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