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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에 연재된 '장정일이 만난 작가'. 장정일이 직접 작가들을 인터뷰해 연재했다. 〈출처: 중앙선데이〉 |
2008년 2월, 나의 5번째 작품집이자 3번째 장편소설인 '베르메르 vs. 베르메르'가 민음사에서 출판되었다. 서울 MBC방송국에서 작가인터뷰를 마친 난 민음사 편집부 K차장님과 함께 종로 피맛골로 가 장정일 형을 만났다.
형은 랜덤하우스 홍보팀장인 H씨와 함께 식사하고 있었다. 대중교양서를 기획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 H씨는 예전 미학사에서 근무하고 있을 당시 형의 '장정일의 독서일기2(미학사)'를 함께 기획한 분이기도 했다. 그는 현재 노무현 대통령과 관련된 책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형의 저녁메뉴는 고등어구이. 식당 '삼성집'의 밑반찬은 소박했다. 식사를 하는 내내 형은 '영어교육' '외국인 공무원 허용' 등을 예로 들어가며 17대 대통령 선거를 비판했다. 특히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주인공인 앤디가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관객은 그 죄에 대한 분노보다는 탈출하는 과정에 더 환호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이번 선거 역시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국민은 미국식 사고, '거친 노동 뒤에는 반드시 시원한 맥주가 있어야 한다'는 논리에 섣불리 카타르시스를 느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내가 대선 때 누구를 찍었냐고 물으니 형은 당시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 투표를 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근래에 '황금파리'라는 시를 하나 지었는데 이 시를 일간지 독자투고란에 투고할 것이라고 했다.(형은 결국 2008년 2월25일 한겨레신문에 이 시를 '독자시'로 발표했다.) 형은 벌이 날아다니는 소리는 견딜 수 있지만, 파리가 날아다니는 소리는 정말 듣기 역겹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식사를 끝내고 우린 술을 마시러 인근에 위치한 노포 '열차집'으로 갔다. 형은 막걸리를, 우린 맥주를 마셨다. 형은 요즘 들어 주량이 많이 줄었다며 막걸리 한 병이 적당하다고 했는데 이날은 두 병이나 마셨다. H씨가 자신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15소년 표류기'를 읽는다고 하자, 형은 슬프거나 우울할 때면 음악을 듣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형은 기쁠 때만 술을 마시고, 슬프거나 우울할 때 그리고 혼자 있을 때는 절대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했다.
요즘 신문과 잡지에 여덟 꼭지를 기고하고 있다는 말에 내가 힘들지 않으냐고 물으니, 돈이 되니 어쩔 수 없지 않으냐며 빙긋이 미소를 머금었다. 형은 부쩍 늘어난 원고량 때문에 책을 많이 산다고 했다. 도서구입비로 매달 40만원 정도 지출하고 있으며 그 대부분이 인문서적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증정용 도서가 집으로 적잖이 도착하지만 자신의 기대에 비해 부족한 편이라고 했고, 인문서적이나 학술서적들은 초판이 500부나 1천부 정도밖에 되지 않아 증정에도 한계가 있을 것이라며 그 점이 조금 아쉽다고 했다.
형은 '중앙선데이'에 연재되고 있는 자신의 인터뷰 원고를 책으로 엮을 생각인 것 같았다. 모 출판사와 계약이야기가 오갔으나 서로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보류되었다고 하자, 옆에 있던 H씨가 "그럼 우리랑 해요"라고 제안했고, 형은 "인터뷰 글이라 잘 안 팔리면 어떡하죠"라며 겸손의 말을 덧붙였다. 이후 우린 형이 준비하는 책이 보다 대중성을 띠려면 김주하씨나 손석희씨와 같은 화제성 높은 인사와의 인터뷰가 더해져야 할 것 같다고 조심스레 조언했다. 그러자 형은 자신의 인터뷰 대상이 '작가'로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며, "손석희씨가 빨리 책을 써야 할 텐데…"라고 농담을 했다. 형은 그 책의 계약금으로 오디오를 구입할 생각인 것 같았다.
중앙선데이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형은 칸트의 '2월은 즐거워라. 근심할 날도 적고'를 패러디한 자신의 시(詩) '1. 월요일은 행복한 날/ 신문도 없고/ 재난도 없으니/ 2. 말세가 되어/ 재난이 들끓으니/ 월요일에도 신문이 나오도다.'를 언급했다. 그러면서 다수의 일간지가 일요판에 뛰어들지 않아 중앙선데이의 고군분투는 당분간 계속 이어질 것 같다고 했다.
〈다음 주에 하편으로 계속 이어집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우광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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