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교육과정을 권력의 입맛에 맞춰서는 안된다

  • 임성무 대구 강림초등 교사·전교조 대구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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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0-03 07:06  |  수정 2022-10-03 07:08  |  발행일 2022-10-03 제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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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무 (대구 강림초등 교사·전교조 대구지부장)

학교교육에서 헌법처럼 권위를 가지고 있는 것이 학교교육과정이다. 교육과정의 총론은 마치 헌법전문처럼 교육의 목적이 함축되어 있고, 교육을 통해 기르고 싶은 인간상이 들어있다. 이에 따라 초중고의 교육목표가 정해지고 각 교과교육과정을 짠다. 그리고 수업을 몇 시간으로 짤지가 정해진다. 지금 교육계 가장 큰 과제가 올해 안으로 2022개정교육과정을 완성하는 것이다. 교육부가 시안을 마련하여 국가교육위원회에 넘기면 확정되어 고시된다.

이전까지 주로 학자들 중심으로 논의되고 확정되어 오던 것과 다르게 현장 교사들의 참여가 확대되었고, 교육부, 시도교육감협의회, 국가교육회의가 함께 준비해 지난해 11월 교육부는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 주요사항'을 발표했다. 우리나라 교육과정 배경에는 OECD가 큰 영향을 미친다. 2018년에 발표된 'OECD 교육 2030' 보고서는 "기후위기에 맞선 긴급한 조치와 행동이 요구된다"고 명시했다. 여기에다 코로나19까지 겪으면서 변동성과 불확실성, 복잡성을 특징으로 하는 미래사회에 대응하는 역량을 기르는 것이 중요한 방향이었다. 그래서 잡은 교육과정의 방향으로 '생태전환교육'과 '민주시민교육'을 강화한다는 내용이 담겼고, 디지털교육에 더해 '노동교육', 즉 '일과 노동에 포함된 의미와 가치'를 교육목표에 반영하겠다고 발표했다.

국회 또한 빠르게 법제화에 나섰다. '환경교육의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법률환경교육법'(약칭 환경교육법) '교육기본법'을 개정하였다. △환경교육법 제4조와 10조에서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환경교육의 활성화를 위한 시책을 수립·시행하여야 하고 민간의 활동을 지원해야 하며, 학교의 장은 학교의 교육 여건에 적합한 범위에서 환경교육 교과과정을 운영하고 활성화 노력을 하여야 한다고 명시했다. △교육기본법 제22조 2(기후변화환경교육)에서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모든 국민이 기후변화 등에 대응하기 위하여 생태전환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교육부가 교육과정 개정 방향을 발표한 시점에 UNESCO '교육의미래 2050' 보고서는 "손상된 지구를 치유하기 위한 교육과정을 마련해야 하며 기후변화 교육을 특별히 강조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런데 대통령이 바뀌고 난 뒤 교육부는 총론 시안에서 위 세 가지 핵심 교육목표를 빼거나 축소하려고 한다. 교육부와 국가교육회의 등이 10만여 명의 대국민 설문조사, 2천여 명의 현장 교원 토론 등을 통해 숙의하여 합의한 결과를 무시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이며, 정치권력에 따라 좌지우지되지 않도록 하려고 국가교육위원회를 입법화했고, 위원장부터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지만 며칠 전 출범했다. 그런데 이게 뭐란 말인가. 여기에다 교육부장관도 없는데 교육부 공무원들은 바람보다 먼저 누워 대놓고 '교육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저버린 채, 정권의 입맛에 따라 춤을 추고 있다. 어떻게 대통령이 달라졌을 뿐인데 이렇게 교육과정의 방향을 틀어버릴 수 있는가. '생태전환교육'은 기후위기로 전 지구적 삶 자체가 위태로운 지금, 우리는 교육을 통해 지속가능한 삶으로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러니 OECD도 UN도 나서지 않는가.

교육부는 이제 겨우 정착되려는 '민주시민교육'도 인성교육으로 바꾸려고 한다. 시대에 따라 인성교육의 내용이 달라져야 하고, 지금 시대는 민주시민교육, 세계시민교육, 여기에 더해 생태환경시민이 가장 필요한 인성교육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9월2일 '교육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며, '민주시민교육과'를 '인성체육예술교육과'로 통합하겠다고 밝혔다. 왜 퇴행하려 할까? 현재 법에 명시된 교육의 목표는 민주시민교육 양성이다. 민주시민교육은 진보·보수를 떠나, 보편교육의 핵심적 가치이지 않은가 .

교육과정 총론 시안에서 '노동교육'을 삭제하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세상은 자본과 노동이 공생할 때 유지되는 것이고, 우리교육은 지나치리만큼 경제교육에서 노동교육을 배제해 왔다. 그러니 교육의 균형을 위해 일과 노동에 포함된 의미와 가치를 교육목표에 반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더구나 대부분이 노동자이고 아이들은 누구나 커서 노동자가 되는 엄연한 현실에서, 학생들에게 노동의 소중함과 노동자의 인권을 가르치는 건 필수적인 일이지 않은가

'대학 가서 미팅할래, 공장 가서 미싱할래 '와 같은 노동 비하 문구가 버젓이 급훈으로 걸리고, 국민 다수가 노동조합의 파업은 모두 불법이라는 왜곡된 인식에 사로잡혀 있는 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노동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까닭이다. 노동이 곧 나의 삶이고, 누구나 안전한 환경에서 존중받으며 일할 자격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야 마땅하다.

교육부는 정치적 중립 의무를 다하기를 바란다. 이미 사회적 합의를 거쳤고, 교육계도 교육과정 고시에 앞서 준비해 나가고 있는데 정치권력의 입맛대로 뜯어고치려 하지 말기 바란다. 방형을 잘 잡고 가는 차를 벼랑 끝으로 몰아가지 마라.

임성무 〈대구 강림초등 교사·전교조 대구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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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무 대구 강림초등 교사·전교조 대구지부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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