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시론] 청와대 미남불, 제자리로 돌아와야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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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0-05   |  발행일 2022-10-05 제27면   |  수정 2022-10-05 06:50
[영남시론] 청와대 미남불, 제자리로 돌아와야
박진관 편집국 부국장

올 5월10일 청와대가 시민에 개방된 후 지난 2일 기준 200만명이 다녀갔다. 기자도 여름휴가 때 청와대를 구경했다. 본관을 거쳐 관저를 관람한 뒤 상춘재 쪽으로 내려오다가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이란 팻말이 눈에 띄었다. 그냥 '석조여래좌상'이었으면 지나쳤을 텐데, '경주의 불상이 왜 청와대에 있을까'라는 궁금증에 청와대 뒷산을 등반했다. 250여m를 10분쯤 올라가자 불상 앞에 다다랐다. 1m가량의 균형 잡힌 몸매에 석굴암 본존불을 닮은 듯 풍만한 얼굴, 뭉툭한 코, 무심한 표정을 한 돌부처가 남산을 바라보며 앉아있었다. 1934년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미남석불(美男石佛)'로 소개된 일명 '미남불'이다. 9세기 통일신라 때 만든 것으로 보존 상태가 양호한 편이었다.

경주가 고향인 이 미남불이 청와대로 오게 된 사연은 우리의 근현대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1910년 한일병탄에 관여한 무단통치의 장본인 초대 조선 총독 데라우치가 1912년 경주를 순시하다 경주금융조합 이사였던 고다이라 료조의 집 정원에서 미남불을 처음 봤다. 그가 탐을 내자 이듬해 고다이라가 데라우치에게 불상을 뇌물로 갖다 바쳤다. 미남불은 서울 남산 왜성대(총독부) 데라우치 관저로 갔다가 39년 다시 북악산 기슭 경무대(현 청와대)로 옮겨졌다. 데라우치의 원불(願佛·사사로이 모시고 발원하는 부처) 목적으로 '무단이건'된 미남불은 광복 이후에도 귀향하지 못한 채 109년째 타향에서 가부좌를 틀고 있다. 그간 1974년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2018년 보물 제1977호로 지정됐다. 그런 가운데 재작년엔 미남불과 같은 쌍둥이 불두가 경주 남산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2017년 혜문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가 '미남불의 귀향 여부'에 관한 의제를 던졌다. 이후부터 경주시의회, 경주시민단체 등은 미남불이 일제가 무단반출한 것이기에 경주로 돌려보내 달라고 줄기차게 요청하고 있다. 지난 5월엔 경주문화재제자리찾기 시민운동본부를 비롯한 경주지역 24개 단체 회원이 용산 대통령 집무실에 불상 반환 청원서를 전달하고 집무실 인근에서 집회도 열었다. 혜문 대표는 앞서 청와대에 불상이 있다는 건 대한민국의 정교분리 원칙에 어긋나고, 한일병탄을 자행한 데라우치가 미남불을 개인의 원불로 삼은 만큼 3·1운동 정신을 계승하는 우리의 헌법정신과 배치된다며 헌법소원까지 냈다.

하지만 미남불의 원래 경주 위치에 관한 논란이 있다. 경주 남산과 경주 이거사(移車寺) 터가 유력하지만, 정확한 위치를 확신할 수 없어 반환은 답보상태다. 게다가 불교계는 이거사 터가 사유지이고, 신앙의 대상인 석불이 박물관에 가면 전시물로 전락한다는 이유 등을 들어 환지본처(還至本處)를 반대하며 청와대에 그대로 두길 바라는 모양새다.

혜문 대표는 최근 기자와의 통화에서 "국가 소유물을 사유지인 이거사 터로 옮기는 건 맞지 않다. 나라의 보물문화재인 만큼 일단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갔다가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기는 보관 전환은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함순섭 경주박물관장도 "(미남불)을 보관·전시할 충분한 여력이 있다"고 화답했다.

미남불은 데라우치 것도 청와대 것도, 불교계 것도 아닌 국민의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청와대를 국민의 품으로 돌려준다고 공언한 만큼, 문화재 역시 '환지본처' 하는 것이 옳다. 일제가 경주에서 서울로 무단으로 이건한 국가 보물을 제자리에 갖다 놓지 않으면서, 그들이 일본에 강탈해간 것을 우리나라로 환수하자고 주장하면 논리가 맞는가.
박진관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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