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경제 위기는 가깝고 정치는 멀다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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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0-06   |  발행일 2022-10-06 제23면   |  수정 2022-10-06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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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경 정치부장

주위의 넘쳐나는 성공담에 혹해서 휴대전화에 일찌감치 깔아 둔 주식 앱을 활성화한 것이 지난해 1월. 모두가 돈을 버는 기회를 혼자서만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함, 억울함, 열등감 그 어디쯤에서 갑자기 용기가 생겼던 것 같다. 그렇지, 주식이라면 삼성전자지. '십만 전자'를 꿈꾸며 8만4천원에 매수 버튼을 클릭. 그렇게 주린이가 되어 동학 개미의 대열에 합류했다. 아줌마들이 주식을 시작할 때면 손 털고 나와야 할 시점이라고 했던가. '십만 전자'를 간다던 삼전은 '오만 전자'로 떨어졌고, '물타기'라는 전문 기술을 동원해도 손실은 점점 커졌다. 지금은 주식 앱을 지워버릴까 말까 고민 중이다. 물려줄 재산도 없는데 주식이라도 물려주면 좋지. 설마 삼성전자가 망하기야 하겠어. 되지도 않는 위로를 스스로 해보지만, 남의 속도 모르고 주가는 연일 바닥 없는 폭락세다.

쌈짓돈 긁어모아 투자했다가 손해 좀 봤다고 앓는 소리 하려는 것이 아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곳곳에서 못 살겠다는 아우성이다. 고환율·고금리·고물가의 삼중고가 만들어 낸 기록적인 경제 위기 때문이다.

최근 환율은 달러당 1,440원대까지 치솟았고 1,500원을 넘을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슬슬 나온다.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13년 만에 7%대를 찍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6% 안팎을 기록 중이다. 늦어도 10월에는 소비자물가가 정점을 찍을 것이라는 정부 예측도 빗나갈 가능성이 크다. 물가 상승률이 둔화하는 속도가 더디면 지금의 고물가 대응책도 무용지물이다. 무역수지는 6개월 연속 적자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25년 만에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다.

외식 물가는 30년 만에 최고로 올라 당장 1만원 한 장으로 밥 한 그릇 사 먹기도 쉽지 않고, '미친 집값'이 만들어낸 가계 부채 1천870조원의 이자가 하루아침에 두 배로 늘었는데 "한국에서 경제 위기가 재현될 가능성은 '매우 매우' 낮다는 게 외부의 시각"(추경호 부총리)이라는 말이 귀에나 들어오겠는가. "정부와 정치권 등이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않고 있는 게 바로 위기 요인"(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이번 위기는 경제 위기이자, 정치 위기"(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라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정권을 교체하고 새 대통령이 취임한 지 5개월. 대통령실 이전, 체리 따봉 문자 파동, 김건희 여사 논문 표절, 비속어 논란 등 돌아보면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문재인 전 정부의 실정을 들춰내고 발목 잡는 야당에 탓을 미루는 것도 한두 번이다. 이전 정부가 못했으니 정권이 교체된 것이고, 명분과 실력으로 야당을 설득해 내는 것이 여당의 당연한 책무인 것을 모르지는 않을 터. 더 크고 무겁게 책임을 지는 자리가 여당이고 '모든 책임의 끝'은 대통령이 아니던가. 그런데도 본분을 망각한 여당은 당내 권력 싸움에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르고, 모든 책임을 마땅히 져야 할 대통령은 정작 자신이 저지른 잘못조차 모르쇠다.

지난 4일부터 윤석열 정부의 첫 국정감사가 시작됐다. 경제 위기를 넘어설 전략과 정책을 모색하는 민생 국감을 기대했지만, 정쟁에만 혈안이니 국감장은 말 그대로 난장판이다. 민생은 뒷전이고 '이 ××' '바이든(날리면)'과 '윤석열차'를 놓고 명분도 소득도 없는 싸움에만 열심이다. 국민의 관심은 '바이든'도 '날리면'도 아닌 택시 요금, 집값, 배춧값, 전기요금, 대출이자에 있다. 지금 우리에게 경제 위기는 가깝고 정치는 멀다.이은경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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