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고, 개교 120주년 발자취] (상)信明, 새벽을 열다...영남지역 근대 여성 교육의 산실, 다양한 분야 걸출한 인물 배출

  • 박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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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0-10 07:13  |  수정 2022-10-17 07:36  |  발행일 2022-10-10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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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신명고가 올해 개교 120주년을 맞았다. 신명고 전경. <신명고 제공>

대구 신명고(옛 신명여고)가 올해로 개교 120주년을 맞았다. 대구를 대표하는 여고 가운데 하나로 지역의 근대교육을 선도했다. 1900년에 애덤스(안의화) 목사가 설립한 대남소학교와 더불어 대구에서는 가정 먼저 세워진 사립 여성소학교가 신명이다. 당시 교회를 중심으로 학교를 설립하자 경북 일대에 산재한 50여 개 교회에서 앞다투어 학교를 설립하는 계기가 됐다. 1902년부터 1910년에 이르는 사이 39개 교회에서 학교를 설립한 것이다. 신명고의 아름다운 발자취를 3회에 걸쳐 싣는다.

중구 동산동에 자리잡은 명문사학
기독정신 바탕 전인적 교육에 뿌리
모교 출신들, YWCA 대구지부부터
양지회·성심회 등 다양한 단체 조직

지역 최초 여성 소프라노 '추애경'
조선 첫 여성 민간 비행사 '박경원'
공교육에 무용 도입한 '임성애' 등
여성에 씌워진 제약 깨고 저력 과시

1902년 5월10일 선교사 부르엔(한국명 부마태·傅馬太·Martha Scott Bruen) 여사가 의료 선교사의 부인 Edith M. Parker의 바느질반 학생들과 놀스(Miss Nourse)양이 가르치던15세 미만 소녀 14명을 인수해 대구 선교지부(Daegu mission center)에 신명여자소학교(Girls' Primary School)를 설립해 개교했다. 신명소학교는 1907년 10월15일 '신명여학교'로 교명이 인가됐다. 당시 '정의(正義)'를 우선되는 가치로 내세웠던 폴라드 교장은 "정의는 국경을 초월하고, 감정을 초월한다. 그러한 이해를 넘어선 곳에서 그 값어치의 의미는 부각된다"고 호소해 미국 북장로회 각 교회의 부인들에게서 기부받은 2천달러와 북장로회 본부에서 원조받은 2천달러가 학교설립의 기본 자산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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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신명여고 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등교를 하고 있다. <신명고 제공>


◆씨앗을 뿌리다: 영남 여성교육의 효시

대구시 중구 동산동에 있는 개신교계열 사립고인 신명고는 영남지역 여성교육의 효시이다. 개교과정에서 보듯이 선교사들에 의해 여성들에게 근대교육을 처음으로 시작한 학교이다. 신명(信明)의 역할은 교명에서 나타난다. 신(信)은 믿음의 토대 위에 학교를 세운다는 뜻이고, 명(明)은 '빛', 곧 어둠을 깨트리는 학문의 횃불을 의미한다. 부르엔 여사의 교육이념은 '사랑', 즉 하나님의 정심을 알리는 데 있었고, 이를 여성 선각자를 키워 펼치려 한 것이다.

1907년 3월31일 제1회 졸업생을 배출한 신명은 이후 자유와 평화, 민족과 국가에 헌신하는 지도자를 배출함으로써 그 소명을 다 해오고 있다. 신명인의 자유와 평화를 위한 몸짓은 1919년 3월8일 신명학교 졸업생이자 교사인 임봉선을 비롯해 이재인, 이선애 교사와 50여 명의 전교생이 참여한 3·8 만세운동을 필두로, 1923년 9월2일 신명학교 출신들이 조직한 YWCA 대구지부, 이어서 양지회, 성심회의 발족으로 이어졌다. 1회 졸업생인 이희경 독립운동가(건국포장)이후 여성에게 씌워진 제약과 악조건을 이기고 의료계, 학계, 예술계 등 다양한 방면에서 활약함으로써 한국 여성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신명은 2003년까지 여학교로 운영되다가 2004년 남녀공학으로 발전적 변신을 했으며, '기독정신'에 바탕을 둔 '전인적 교육'과 3·8독립만세운동(3·1운동)에 담긴 '구국애민정신(救國愛民情神)'에 뿌리를 둔 명문사학으로서 120년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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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고 출신 박재훈(오른쪽) 선수는 국내 최초 프로복서 출신 변호사다. <신명고 제공>


◆길을 열다: 모든 것의 처음

신명은 늘 새로운 길을 열어왔다. 8회 졸업생 추애경씨는 영남 지역 최초의 여성 성악가(소프라노)다. 신명여학교 졸업반인 1919년 만세운동에 참가한 추씨는 이화여대 성악과를 졸업하고 신명학교 교사로 재직 중 일본으로 건너가 피아노를 전공했다. 이후 미국으로 가 워싱턴대 성악과와 보스턴 뉴잉글랜드 음악원을 졸업했다. 천재음악가로 명성이 높던 추씨는 1927년 미국 유학을 앞두고 연 송별음악회에 수많은 인파가 북적였고, 1932년 보스턴 추계 음악대회에 참가하여 당시 보스턴 음악잡지에 '조선의 천재 리릭 소프라노'로 칭송받았다. 추씨는 영남 지역 1세대 음악가이자 여성 성악가로 미국에서의 활발한 활동으로 큰 족적을 남겼다.

9회 졸업생인 박경원씨는 '빨간 마후라'로 유명한 영화 '청연'의 실재인물이다. 신명학교 졸업 후 일본 가마다 자동차 학교를 수료해 조선 최초의 여성 자동차 운전자격증 소지자가 됐으며, 1925년 다치가와 비행학교에 진학해 수석 졸업을 했다. 1927년 최초 여성 비행사가 됐으며, 1928년 일본 도쿄 요요기 연병장에서 열린 비행경기대회에서 3등을 차지하면서 2등 비행사 자격을 취득했다. 하지만 1933 년 도쿄-서울-평양-만주에 이르는 비행을 위해 일본 하네다 공항을 출발해 이륙한 지 50분 만에 일본 시즈오카현 겐가쿠산에 추락해 사망했다. 박씨는 끝내 창씨개명을 거부했으며, '조센징'이란 말을 들을 때마다 상대를 가리지 않고 따귀를 후려쳤다는 일화가 전한다.

26회 졸업생인 임성애(1921~2006)씨는 1942~60년 신명학교 교사를 거쳐 경북대 체육교육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포크댄스를 무용교육커리큘럼으로 포함시켜 최초로 공교육에 무용을 도입한 업적을 쌓았다. 대구중고교 무용교사 대부분이 그의 제자로 무용교육의 대모(大母)로 불린다.

35회 졸업생으로 계명대 의과대학 교수를 지낸 신동학씨는 국내 최초로 의과대학 커리큘럼에 '가정의학과'를 개설함으로써 의학의 영역을 세분화했다. 또한 국내 최초로 가정의학과 석·박사 과정을 개설하고 가정의학과 교과서를 발간하는 등 가정의학 분야를 발전시킨 선구자였다.

조명희(58회) 국회의원은 2021~2022년 2년 연속 대한민국 국회의정대상 입법활동부분 의정 대상을 수상함으로써 일하는 국회의원으로 인정받고 있다. 원격탐사 및 GIS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조명희 동문은 경일대 위성정보공학과와 경북대 항공위성시스템학과 에서 후학을 양성하다가 국회로 진출해 그의 전문성을 국책에 반영하고 있다.

새벽을 여는 신명의 전통은 남녀공학으로 변신하고 난 뒤에도 변함없는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 국내 최초 프로복서 변호사인 박재훈(95회) 변호사는 신명고 재학 중 어려운 가정환경 탓에 공부를 등한시하고 게임과 운동에만 빠져있던 문제아였다. 크게 기운 가세를 일으키고자 공부를 시작하기로 다짐한 박 변호사를 모두 비웃었지만, 담임교사는 이를 격려하고 학습을 도왔다. 뒤늦게 공부에 흥미를 느낀 그는 법학이 사회정의를 세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마침내 로스쿨에 진학했다. 로스쿨에서 항상 상위권을 유지했던 그는 변호사 시험(변시 10회)도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 법률사무소를 개소했다.

지난 4월 한국권투연맹에서 주관한 자선복싱대회 '승부14' 슈퍼 라이트급 경기에서 승리한 박 변호사는 20세 때부터 종합격투기와 복싱 등으로 커리어를 쌓았다. 로스쿨을 준비하면서도 복싱 프로 테스트를 받을 정도로 열정적이다. 압도적인 기량으로 프로테스트를 단번에 통과한 그는 2018년 로스쿨 1학년 때 처음 프로 복싱 대회를 나갔다. 그는 몸으로 부딪치며 이루는 정직한 변호사가 되었다.

박종문기자 kpj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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