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말 문화 만들기'

  • 이지영 대구 화원중 수석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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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0-10 07:13  |  수정 2022-10-10 07:18  |  발행일 2022-10-10 제11면

이지영
이지영 <대구 화원중 수석교사>

"선생님, 사랑해요." "선생님, 존경합니다."

수업을 마치고 복도를 지나가는데 1학년 학생 몇몇이 갑작스러운 인사를 건넨다. 오늘이 스승의 날도 아닌데 갑자기 이런 말을 들으니 장난의 대상이 된 것 같아 경계의 마음이 먼저 든다. 하지만 이런 마음과 함께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참 이상한 일이다.

교무실로 돌아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예쁜 말 쓰기 행사'를 시작한 것이 생각났다. 책상 위 한쪽에 올려둔 빨간 도장이 눈에 들어온다. 교사마다 이름과 귀여운 그림이 함께 새겨진 도장을 받았다. 행사 방법은 간단하다. 어떤 말이 예쁜 말인지 떠올려 보고 생각을 나누는 활동을 한다. 이후, 예쁜 말을 하는 학생을 발견하면 교사가 개인별로 도장을 찍어주면 된다. 이 행사는 학생들이 좋은 말, 배려와 존중이 담긴 말을 많이 쓰도록 하기 위한 행사이다. 또, 비속어나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말을 줄이도록 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물론 이런 행사를 통해 나쁜 말을 좋은 말로 모두 바꿀 수는 없다. 어떤 것이 좋은 말이고 서로에게 필요한 말인지 학생들은 알고 있지 않을까? 실천이 어려울 뿐이다. 생각이 행동이 되기 위해서는 문화가 되어야 한다. 의식하지 않아도 몸에 배어 나타나야 한다. 나의 마음을 표현했을 때 나와 상대방이 모두 어색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문화가 되는 것은 긴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의 작은 노력, 짧은 시간이 모여 긴 시간이 되므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표현하기 활동을 하면 학생들은 구체적인 사건은 잠시 고민하며 찾아내지만 감정 표현을 할 때는 오글거려서 할 수 없다고 한다. 학생들이 흔히 하는 오글거린다는 말속에 민망함과 놀림거리가 되고 싶지 않다는 복잡한 심정이 드러난다. 나에게도 표현한다는 것은 여전히 쑥스러운 일이다. 인사를 주고받는 것, 감사를 표현하는 것은 일상이지만 칭찬과 사랑을 담은 말을 들을 때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라 주춤하게 된다. 칭찬과 사랑의 말을 많이 해야 한다고 가르치면서도 정작 그것이 나에게 문화가 되지 못했다는 증거이기도 한다.

이해인 시인의 '말을 위한 기도'라는 시에서 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 수 있다.

'내가 지닌 언어의 나무에도/ 멀고 가까운 이웃들이 주고 간/

크고 작은 말의 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둥근 것 모난 것/ 밝은 것 어두운 것/ 향기로운 것 반짝이는 것/

그 주인의 얼굴을 잊었어도/ 말은 죽지 않고 살아서/ 나와 함께 머뭅니다.'

내가 한 말이 누군가의 언어의 나무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니 절로 반성이 된다. 몸의 상처도 아프지만 말이 낸 마음의 상처는 그 아픔의 깊이를 헤아리기 어렵다. 우리는 수많은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그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적절히, 제대로 표현하고 있는가? 우리의 말이 존중, 인정이라는 토대 위에서 어색함 없이 주고받을 수 있는 문화로 자리 잡았는가? 나의 언어의 나무에도 누군가의 말, 나의 말이 열매가 되어 달렸다. 언어의 나무가 향기를 풍기고 반짝일 수 있도록 예쁜 말이 문화가 되었으면 한다.

576돌 한글날을 맞이했다. 한글이라는 위대한 문자를 가진 우리는 아름다운 말 문화를 만들 책임이 있다. 한글 창제에 담긴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 위하는 마음이 계속 이어져 의미 있는 말 문화를 만들고 힘을 주는 말들로 일상을 채워가야 할 것이다.

"얘들아, 사랑한다." "선생님, 사랑해요."

우리의 마음에 행복이라는 도장을 찍을 수 있도록 말이다.
이지영 <대구 화원중 수석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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