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고, 개교 120주년 발자취](중)정의가 강물처럼...전교생 대구 3·8만세운동 참여, 항일·사회운동 요람으로 '우뚝'

  • 박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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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0-17 07:26  |  수정 2022-10-17 07:37  |  발행일 2022-10-17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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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성탄절을 맞이해 학생들이 '베니스의 개성상인' 공연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신명고 제공>

1919년 만세운동은 3월1일 서울 탑골공원을 필두로 전국 도처에서 들불처럼 번져갔다. 대구의 만세운동은 3월8일. 여학교로서는 유일하게 신명여학교가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신명학교 전교생과 졸업생 및 교사들은 계성고보·대구고보 학생, 성서학당 수강생, 남성정(제일)교회·신정(서문)교회 교인들 그리고 1천여 명의 시민과 합세하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日 경찰 만세운동 무자비하게 진압
교사 등 참가자 상당수 징역형 선고
졸업생 비밀결사 애국부인회 맹활약
이금례·차보석 독립운동 적극 나서
박동준·이명숙 등 후학 각계서 두각

◆전교생 3·8만세운동 참여

신명학교가 대구 3·8만세운동의 선봉에 선 데는 설립이념인 기독신앙에 힘입은 바 크다. 일제 치하 한국 교회는 독립운동을 신앙적 실천으로 여겼던 만큼, 신명학교 또한 자유와 독립을 위한 저항운동에 앞장섰다. 이만집·김영서·권희윤·신태근과 같은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항일 민족주의를 고취하고 있었는데, 1919년 2월, 후일 민족대표 33인 중 1인이 된 이갑성으로부터 만세운동 동참을 권유받은 남성정교회 이만집 목사가 이를 신명학교 교사 이재인과 모교에서 교편을 잡던 임봉선·이선애 등에게 알렸고, 신명은 대구만세운동을 조직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했다. 평양에서 만세 운동을 목격한 숭실학교 학생 김무생과 김천교회 전도사인 박재원 등도 신명학교를 찾아와 여학생 궐기의 필요성을 역설한 바 있었다.

1919년 3월8일, 영남 여성교육의 선구자이자 기독교인으로서, 신명학교 전교생 50명은 만세행렬에 나섰다. 최정술을 비롯한 일부 학생은 데모의 시발지인 큰 장에서, 이영현을 비롯한 통학생 및 저학년 10여 명은 동산교 조금 지난 지점에서, 그리고 30여 명의 기숙사생들은 남성정파출소 앞에서 각각 데모대와 합류하여 만세를 불렀다. 그러나 이들이 달성군청 앞에 이르렀을 때 일본 경찰·헌병·군인들로부터 무자비하게 구타당하고 거의 전원이 구속되고 말았다.

이때 만세를 불렀던 학생들 즉 강정숙·김귀조·곽춘학·염향이·추동암·강태덕·김갑련·김남출·김달희·김복조·김옥향·이봉선·이순이·백일화·최순희·최정술·홍범순·김일애·이영현·백갑덕·장희조·강성희·김학진·서분이·손원련·송숙이·주금경·차영숙·천선희 등은 2주 정도 구류되었다가 나이 어린 여자란 점이 참작되어 석방되었다. 그러나 졸업생 교사 및 신명의 연고자들은 전원 재판에 회부되어 다음과 같은 실형을 언도받았다. 이만집 3년, 김태련 2년 6개월, 김영서·김무생·정재순 각 2년, 박재원·권희윤·최경학 각 1년 6개월, 이재인·임봉선 각 1년, 신태근·이선애 각 6개월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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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신명여고 학생들이 자전거로 통학을 하고 있다. <신명고 제공>


◆여성 독립운동가 배출, 항일운동에 큰 활약

3·8 이후 신명의 독립운동정신은 여권신장과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한 여성비밀결사 대한민국 애국부인회(회장 김마리아) 그리고 종교운동과 민족운동을 목적으로 삼은 조선여자기독청년회(회장 김활란) 등의 대구지부를 이끌면서 계승 발전되었다. 1회 졸업생 이금례와 신명학교 교사 유인경은 독립운동 자금모집, 독립운동원의 안전보호, 독립운동 유가족의 생계보조 등을 주 임무로 삼았던 대한민국애국부인회의 대구지부장으로 활약했는데, 1919년 11월 대구경찰서에 의해 단원 전원이 체포되었다. 이후 이금례는 1920년대 중후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는 활동에 헌신했다.

1회 졸업생 임성례, 7회 추애경(동암), 9회 이영현 등은 독립을 대비해 여권신장운동, 농촌계몽운동, 절제운동 등을 펼쳤던 조선여자기독청년회 대구회장으로 활동했는데, 아쉽게도 1937년 일제의 철저한 황민화정책으로 인해 기능을 상실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낸 동암 차리석(1881∼1945)의 여동생 차보석(1892∼1932)도 신명학교 출신 독립운동가이다. 차보석은 1910년 신명여학교 교사로 부임했다. 1919년 3·1운동 직후 상하이로 망명한 차보석은 흥사단에 참여하고, 30세인 1922년 미국으로 건너가 1925년 대한여자애국단 샌프란시스코 단장을 거쳐 대한여자애국단 총단장(1926∼1928년)을 역임했다. 그는 당시 샌프란시스코에서 국어학교 교사를 했는데 학생들에게 한국 혼을 심었고, 독립운동을 지원하기 위한 자금 모금에도 노력했다. 차보석은 1932년 3월21일 불과 40세의 나이에 숨을 거뒀다.

개교 65주년을 기념해 1972년 10월23일 대구 신명여고와 성명여중에는 1919년 3·1만세운동 참여자를 기리는 3·1운동 기념탑을 세웠다. 3·1운동 기념탑을 교내에 세운 학교는 당시 전국에서 신명여고가 처음이었다. 2007년에는 신명고 역사관을 개관했으며, 2019년 3월 1에는 3·1만세운동 100주년 기념행사를 가졌다. 2021년에는 선배들의 독립운동의 발자취와 나라 사랑의 마음을 널리 알리고, 차별받던 여성들이 자유와 민주의 새나라 건설의 주체로 참여하였음을 드러내고자 신명고 역사관을 '3·1운동 기념관'으로 리모델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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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고 학생들이 2000년 3·1운동 재현행사에 참가했다. <신명고 제공>

◆헬렌 켈러(Helen Keller)여사 방문

신앙과 애국애족하는 신명학교의 명성은 1937년 6월12일 인권운동가 헬렌 켈러 여사의 방문으로 이어졌다. 당시 전 세계 장애인 시설을 둘러보던 헬렌 켈러 여사는 대구의 신명학교를 방문해, 전교생들에게 '미래 코리아의 역사를 짊어질 신명의 딸들이여! 꿈을 가져라(Girls! Be ambitious!)'고 외쳤다. 또한 '달란트(탤런트)를 사용하여 아름다운 작품이 되라'고 당부했다. 그녀의 연설은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 신명여학생의 가슴에 평화와 예술의 불씨를 지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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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신명여고가 전국 최초로 교내에 3·1운동 기념탑을 건립, 제막식을 갖고 있다. <신명고 제공>

◆국가·사회발전으로 승화

신명학교 선배들의 3·1 만세운동 정신과 항일독립운동은 후배들에 의해 국가발전을 위한 사회운동으로 승화된다. 대한민국의 여성인권, 양성평등운동, 사회봉사 등에 신명고 출신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최종덕(38회)씨는 1950년 서울대에서 원자 물리학을 전공한 수재로, 여권운동가, 교육가로 평생 사회활동과 봉사활동을 펼쳤다. 그는 모교에서의 교편생활을 시작으로 계성초등 교장 등 40여 년간 교육계에 몸담았으며 한국교육자 대상과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한국 걸 스트카우트 대장, 대구YWCA 회장, 대한적십자사 대구경북지사 부지사장, 신명여고 동창회장, 서울대 종신이사 등을 역임했다.

학도호국단 간부였던 곽숙현(39회)씨는 한국동란 발발 이듬해 당시 1학년, 열여섯의 나이로 자원입대해 당시 부산으로 피란해 있던 육군종합학교(육군사관학교)에서 김홍일 장군 비서실에 1년간 근무했다. 복학 후 약학과에 진학, 은퇴 전까지 시민건강을 위해 일했다.

1972년 패션디자인에 첫발을 내디딘 박동준(55회)씨는 대구 1세대 패션디자이너다. 40년간 섬유패션도시로서 대구의 위상을 국내는 물론 해외로(파리, 뉴욕, 애틀랜타, 도쿄, 하노이, 중국의 베이징, 칭다오, 다롄) 널리 알리는 역할을 했으며, 세계패션그룹 한국회장과 한국패션산업연구소 이사장직을 수행하면서 후배 양성에도 최선을 다했다.

대구아트페어 조직위원장을 비롯해 <사>이상화기념사업회 이사장직을 역임하면서 지역문화가 꽃필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해 주었고 '아름다운 가게' 전국 공동대표 및 대구경북 대표로 활동하면서 환경과 나눔 운동에도 모범을 보여주었다. 박동준 기념사업회를 통해 박동준상을 시상하며 후학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현재 신명고 교복도 박동준씨가 디자인한 작품이다.

이명숙(68회) 법무법인 나우리 대표 변호사는 가정폭력, 성폭력, 아동학대 사건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사건에서 피해자들을 위한 변호에 헌신했다. 이 변호사는 또 '도가니 사건'으로 불린 광주 인화학교 손해배상청구소송, 세월호 사건, 인천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 인천 11세 여아 아동학대 사건 등 우리 사회를 뒤흔든 다양한 사건에서 피해자 지원 활동을 벌인 공익변호사다. 2014∼2015년 한국여성변호사회장, 한국가족법학회 이사. 여성가족부 고문변호 역임. 대한변협 인권이사를 역임했으며 아동·여성 권리에 힘써온 공로로 의암주 논개상을 받았다. 박종문기자 kpj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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