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공연에 앞서, 가볍게(?) 마주하는 15분의 에피소드

  • 장은주 뮤지컬 배우·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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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0-12  |  수정 2022-10-12 08:08  |  발행일 2022-10-12 제24면
[문화산책] 공연에 앞서, 가볍게(?) 마주하는 15분의 에피소드
장은주 뮤지컬 배우·연출가
·안무가 김효정씨가 연락이 왔다. 가벼운데 결코 가볍지 않은 '15분 연극'을 무용 전에 해달라는 것이었다. 머리가 아파 온다. 주는 무용인데, 그렇다고 마냥 가벼울 수도 없다.

모호한 말로 관객에게 혼란을 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너무 명료해서 무용의 상징성을 미리 단정할 수도 없다. 거짓말 좀 보태서 정말 수백 번을 고치고 또 고쳤다. 엄마와 딸 또는 친구와 연인으로 정체성을 확립할 수도 없다. 인간이라는 화두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모든 게 혼란스럽다. 이럴 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무용 '술독에 빠진 금붕어(곶·곳·곧)'의 화두는? 모든 불행은 오해로부터 시작됐다. 오해는 미움을 낳았다. 상호 간에 소통으로 분명 해결될 수 있었다.

하지만 때가 늦춰지고, 질질 끌다 미움은 원망이 됐다. 그때부터 폭력이 시작된다. 정제되지 않은 막말이 오고 갔고, 오해는 오해를 낳았다. 말의 폭주. 말은 서로를 할퀴고 헐뜯다 결국 서로를 허물어뜨렸다. 남은 건 결국 지독한 고독뿐.

그렇게 해서 15분 연극이 완성됐다. 나는 '폭력의 대물림'에 주목하고 싶었다. 병원에 입원한 두 사람이 있다. 섭식장애다. 음식을 거부하는 사람(거식증)과 끊임없이 먹어대는 다른 한 사람(폭식증).

하지만 치료 과정 중 둘은 언어폭력 피해자임이 드러난다. 그들에게 음식은 '말'의 물질적 표현이다.

한 사람은 침묵을 선택했다. 비수가 됐던 '말'을 되돌려 주고 싶지 않았다. 카뮈는 "인간은 그가 말하는 것에 의해서 보다는 침묵하는 것에 의해서 더욱 인간답다"고 말했다.

언어폭력의 당사자는 폭력 언어의 대물림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침묵을 선택했다.

하지만 다른 한 사람은 어떨까? 인터넷을 통해 끊이지 않고 비방을 일삼고, 거짓을 유포하고, 타인의 사생활을 공개하고, 사이버 모욕을 서슴지 않았다. 이런 현상을 정신분석에서는 '공격자와 동일시(Identification with Aggressor: 공격성을 이어받아 나 자신도 그리된다)'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원인이야 어떻든 간에 결국 그 둘은 피해자에서 피의자로 돌아설 소지가 다분하다. 폭력의 파괴력과 위험성, 무뎌진 경각심과 일상에서 쉽게 자행되는 현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둘은 간절하게 치료를 원하기 때문이다. 서슬 퍼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정말 무서운 것은 폭력이 폭력인 줄 모른다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희망이 있다. 보고, 듣고, 느꼈다. 예상되는 결말도 마주했다. 모든 예술의 화두는 바로 '깨달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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