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만진의 문학 향기] 벽오동 심은 뜻은

  • 정만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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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0-14  |  수정 2022-10-14 07:55  |  발행일 2022-10-14 제15면
[정만진의 문학 향기] 벽오동 심은 뜻은
정만진 소설가

1709년 10월14일 조선 후기 문신 이서우가 이승을 떠났다. 그가 남긴 시 중에는 '도망후기몽(悼亡後記夢)'이 특히 널리 알려졌다. 아내가 먼저 세상을 하직한 후 혼자 남아 쓸쓸한 가을밤을 맞이했는데, 그날따라 비가 내렸다.

"곱던 모습 희미하게 보일 듯 사라지고(玉貌依看忽無)/ 깨어보니 등불만 외로이 타고 있네(覺來燈影十分孤)/ 가을비가 꿈을 깨울 줄 진작 알았더라면(早知秋雨驚人夢)/ 창 앞에 벽오동나무 심지 않았을 것을(不向窓前種碧梧)."

꿈에 아내를 만났다. 살아생전 그 곱던 모습을 또렷하게 볼 수 있을 법했는데, 오동나무 잎사귀에 가을비가 후두둑 떨어져 내 잠을 흔들어버렸다. 깨어나 어리둥절 주위를 살펴보니 홀로 남은 등불의 그림자만 너무나 쓸쓸하게 흔들리고 있다.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예전에 짐작했더라면 창밖에 벽오동은 심지 않았을 텐데….

벽오동을 심을 때 부부는 함께했을 것이다. 이토록 정겨운 부부인데 창밖에 어떤 나무를 둘 것인지 머리를 맞대지 않았을 리 없다. 하지만 지금은 그 나무가 두 사람을 만나지 못하게 하는 훼방꾼이 되었다. 우리가 왜 벽오동을 심었는지 가을비는 정녕 모른단 말인가!

그 순간 이서우는 가을비 들으라는 뜻에서 "벽오동 심은 뜻은 봉황을 보렸더니/ 내 심은 탓인가 기다려도 아니 온다/ 무심한 일편(一片) 명월이 빈 가지에 걸렸어라"라는 시조를 읊어주고 싶었을 터이다. 부부가 벽오동을 심은 것은 아름다운 날을 염원했기 때문이다.

벽오동과 봉황 이야기는 '장자'에 나온다. "남방에 사는 새 원추(봉황)는 벽오동이 아니면 앉지 않고, (60년에 한 번 열릴까 말까 하는)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으며, (태평성군의 시대에만 솟아나는) 예천 샘물이 아니면 마시지 않는다."

그런 좋은 세상을 부부가 함께 누리고자 했다. 그러나 아내가 먼저 죽었으니 모든 게 도로 아미타불로 떨어졌다. 이규보의 노래처럼 "봉황을 보려고 벽오동을 심었더니(本因高鳳植)/ 부질없는 잡새들만 날아드는(空有衆禽棲)" 상황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나는 이서우의 기일인 오늘 그를 위해 한마디 위로의 말씀을 드리려 한다. "당신께서 가시고 300년도 더 지났지만 아직도 이 땅에는 봉황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당신께서는 부인을 다시 만난 지 300년이나 되지 않았습니까?"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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