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외부 필진의 글은…'

  • 성병조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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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0-24  |  수정 2022-10-24 08:28  |  발행일 2022-10-24 제19면

[문화산책] 외부 필진의 글은…
성병조〈수필가〉

너무 사랑하면 미움으로 변할 수 있다고 했던가. 워낙 신문을 좋아해 장기 구독하다 보니 남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곳까지 눈길이 미치게 된다. 혹자는 별난 꼬투리 잡는다고 나무라도 어쩔 도리가 없다.

수년 전 일이다. 신문에 색다른 문구가 등장한다. 오피니언 면의 중간 지점에서다. '외부 필진의 글은 본사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외부 필자는 주로 교수나 각계 전문가들이어서 무게감이 실린다. 그런 칼럼 바로 아래 이런 글귀가 들어간 게 무척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중앙지에서 시작된 이 같은 바람이 지방까지 내려와 신문이라면 죄다 이 문장을 삽입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수긍하기 어려웠다. 신문을 사랑하는 독자 편에서는 김빠지는 일이다. 좀 과장하면 '본 칼럼 중 일부 내용은 거짓일 수도 있습니다'는 말을 연상하게 하였다.

언론사의 내부 사정을 소상히 알 수 없어도 법망을 피하기 위한 꼼수처럼 여겨졌다. 외부 필자의 글이 언론사의 편집 방향과 어떻게 일치할 수 있을까. 같다면 뭐하러 바깥 필진을 불러들이는가. 이런 일로 송사에 휘말려 손해라도 본 적이 있는지 궁금하였다.

보수성 짙은 신문이 반대 성향의 인사를 필진으로 모시기는 어려울 것이다. 신문사가 지향하는 바와 어느 정도 근접한다고 하더라도 똑같을 수는 없는 법이다. 너무도 분명한 일인데도 이런 표현을 사용하여 독자들을 자극할 필요가 있을까.

궁금하면 잘 지나치지 못하는 성정이 발동한다. 바로 장문의 글을 띄웠다.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의 언론사이다. '외부 필진의 글은…'에 대한 소견과 함께 부음란에 실리는 이름들에 대한 제언도 함께 넣었다. 즉 여러 사람이 등장하는 부음란을 읽기 쉽게 가나다순으로 하지 않고 뒤섞인 순서를 지적한 것인데 깊이 숙고한 모양이다.

얼마 후 담당 기자가 전화를 걸어와 좋은 지적에 감사하며 내부 논의 중이라고 하였다. 이때 나는 유력 언론사가 앞장서서 이 점을 개선하면 타 언론사도 뒤따를 거라고도 말해 주었다. 제안은 헛되지 않았다. 얼마 후 두 가지 모두 개선되어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요즘도 많은 언론사가 여전히 이 문구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바뀐 거라고는 오피니언 면의 중반부에서 하단으로 옮겨갔을 뿐이다. 언론사의 지향과 외부 필진의 글이 완전히 일치하기는 불가능한 일이다. 당연한 사실인데도 굳이 이처럼 집착하는 것은 글쓴이는 물론 신문을 아끼는 독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본다.
성병조〈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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