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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주희 'Repetition-Trace of meditation' |
캔버스 위에 물감을 올리고 스퀴지(나무에 붙어있는 평평한 고무 날)를 이용해 밀어내고 당기고, 숨기고 드러낸다. 반복과 사유가 녹아든, 켜켜이 쌓은 노동은 화면에 중첩된 흔적을 남긴다. 무심하게 만들어진 그 자취는 곧 작가의 내면 표출이다. 그렇게 의식과 무의식이 뒤엉켜 유영하며 빚어낸 회화는 수면 위에 물결이 일거나 빛이 반사되는 듯한 형상 같기도 하고, 꽃잎이 잔잔한 바람에 일렁이는 모습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유주희(Yoojuhee)의 개인전 '반복-사유의 흔적(Repetition_Trace of meditation)'展이 갤러리동원 앞산점에서 열리고 있다. '반복-사유의 흔적' 작품 18점이 전시돼 있다.
유주희는 "언어나 말로 설명되지 않는 내면의 생동하는 감각과 이미지들을 물감이라는 재료와 스퀴지로 표현하는 신체 행위를 통해 캔버스 위에 자유롭게 드러낸다. 의식의 통제를 벗어나 자유롭게 물성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작가 노트를 통해 밝혔다.
유주희는 '블루 작가'로 통한다. 유독 청색을 좋아한다. 주로 쓰는 컬러는 '안트라퀴논 블루'. 작가는 이 컬러에 대해 "명징하고 쌈박하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이 컬러의 물감이 수입되지 않아 근작의 블루는 '스멜트휴'를 쓴다고 했다.
유난히 청색을 좋아하는 것은 경남 하동 출신인 작가의 유년기 경험이 녹아있는 까닭이다. 하동의 섬진강에서 친구들과 뛰어놀며 바라본 짙푸르고 강한 강물, 소나무 숲, 모래밭 등 주변의 자연 경관이 그의 미의식 형성에 밑거름이 됐다.
붓 대신 스퀴지를 사용하는 배경에도 강한 감성이 자리한다. 작가는 "얇은 붓이 내 정서에는 맞지 않았다"면서 "유년기 시절 보고 자란 자연 환경과 더불어, 딸이지만 강단 있게 키우려고 했던 모친의 영향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영남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작가는 초기에는 구상 작업을 하다가 결혼으로 작품 활동을 쉬게 됐다. 그러다 2001년 영남대 대학원(서양화 전공)에 진학한 이후 이전의 틀을 깨고 스퀴지를 사용한 회화적 기법을 전개해 오고 있다. 그녀 특유의 스퀴지 회화를 고안해 지속적으로 펼쳐온 지 벌써 20년이 지났다.
그의 스퀴지 회화는 △생짜의 아사천 위에 검정과 흰색의 아크릴 물감을 얹은 뒤 스퀴지로 민 '형(形)과 태(態)'(대략 2000~2005년) △화면 분할을 통해 색면과 스퀴지 회화를 함께 선보인 '존재 너머의 풍경'(Landscape over being, 대략 2005~2009년)에 이어 비교적 짧은 시기의 '청색(Blue)'와 '무제(Untitled)' 시기를 거쳐 왔다.
이번 개인전에서 전시하는 '반복-사유의 흔적'은 2009년부터 선보이고 있는 가장 긴 기간을 점유한 연작이다.
작가는 "반복되는 행위의 시간성과 연속성, 표면에 나타나는 우연성과 겹쳐지는 흔적들 그 자체가 내 작업의 전부"라면서 "최근에 정형화되게 패턴화되는 회화성을 깨고 싶은 마음에 작업하는 작품도 있는데, 이번 전시에서 함께 소개한다"고 귀띔했다.
윤진섭 미술평론가는 그의 작품에 대해 "물이나 하늘, 숲 등 자연에 대한 은유로서 유주희의 단색화는 명상적이며 치유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유주희가 자기 작업의 소재로 선택한 자연은 곧 영적 인간이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될, 하이데거의 말을 빌리면 '고향(die Heimat)'에 해당한다"고 평했다. 전시는 28일까지.
박주희기자 j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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