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작별인사는 짧았다, 시유 어게인

  • 장은주 뮤지컬 배우·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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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0-26  |  수정 2022-10-26 07:45  |  발행일 2022-10-26 제18면

[문화산책] 작별인사는 짧았다, 시유 어게인
장은주 (뮤지컬 배우·연출가)

악극 '꿈에 본 내 고향'에 주역으로 참여한 적이 있다. 2018년 일이다. 명품 배우 이원종, 전원주, 최주봉 등의 화려한 캐스팅과 일제강점기, 광복, 6·25전쟁 등 한국 근현대사를 넘나드는 스펙터클한 전개의 작품이었다. 또 뮤지컬을 방불케 하는 다양한 장르의 협업은 지금 생각해도 다시 없을 최고의 작품이었다. 특히 주인공 '순이'를 통해 위안부 여성의 아픈 삶까지 다뤘으니 역사적으로나 교육적으로도 손색없었다. 위안부 할머니의 리허설 현장 방문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악극을 연출하고 싶었다. 해보니 그 진가를 알겠더라. 하지만 새파랗게 어린 연출가에게 '번지없는 주막'(1993) '홍도야 울지마라'(1994) '굳세어라 금순아'(1995) '이수일과 심순애'(1997) '눈물 젖은 두만강'(1998) '비 내리는 고모령'(2000) 등의 명품 악극을 맡길 리 만무했다. 그럼 쓰자. 내가 쓰면 누가 뭐라 하겠는가? 그래서 악극 공부를 시작한 것이 3년 전이다.

악극의 묘미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향수를 자극하는 음악이다. 누가 좋을까? 뭐니 뭐니 해도 박시춘이지. 대중가요 작곡가로서는 최초로 문화훈장(1982년 10월)을 받았다. 작곡한 노래만 3천여 곡에 이르니 어떤 곡을 가져와도 스토리텔링이 된다. 대중가요 저작권법의 초석을 다지기까지 했으니 사비를 털어 저작권료를 지불해도 아깝지 않다. 정말 이만한 작곡가도 없다. 근데 아뿔싸. 한 가지 비극적인 상황이 있다. 바로 '혈서지원'(1942)이다. 작사 조명암, 작곡 박시춘, 가수 남인수가 참여한 대표적 군국가요. 군국가요는 일제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전쟁 동원을 독려하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진 노래다. 그 내용은 이러했다. "무명지 깨물어서 붉은 피 흘려서, 일장기 그려 놓고 성수만세 부르고 (중략) 나라님의 병정 되기 소원입니다." 뭐 '혈서지원' 하나면 어떻게든 눈 감으려 했다. 하지만 '고성의 달' '남쪽의 달밤' '낭자일기' '병원선' '아들의 혈서' '아세아의 합창' '즐거운 상처' '진두의 남편' '결사대의 아내' '옥퉁소 부는 밤' '조선해협' '지원병의 집' 그리고 '혈서지원' 등 총 13곡 정도가 확인된다. 서른이 채 되지 않았을 때 쓴 곡들이다.

난 악극은 단 한 작품도 쓰지 못했다. 한데 나의 기고는 오늘이 마지막이다. 그러니 다음에 만날 땐 자랑할 만한 악극 하나 정도 있으면 좋겠다 싶다.

'작별 인사는 짧았다. 잘 가요 동지들, 독립된 조국에서 시유 어게인' <미스터 션샤인 中>

장은주 (뮤지컬 배우·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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