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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27회를 맞이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국내에서 열리는 가장 큰 규모의 국제영화제로 전주국제영화제,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와 더불어 국내 3대 영화제 중 하나이다. 하지만 부산국제영화가 가지는 위상은 매우 독보적이다. 영화제의 예산 규모뿐 아니라, 창작자는 물론 국내외 수많은 영화 관계자들이 부산국제영화제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이제 국내를 넘어 명실상부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가 되기 위해 그 걸음을 계속 내디디고 있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정상 개최되어 많은 관객과 영화인들이 설렘을 안고 부산을 찾았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가 많은 이들의 기대 속에서 출발하였지만, 그것이 모든 이에게 있는 그대로의 축제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지난 5월,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역임했던 강수연 배우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외압 등으로 격랑에 빠져있을 때, 강수연 배우는 그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전면에 나섰다. 특히나 힘든 시기에 배우 출신으로서 더더욱 어려웠을 그 자리를 마다하지 않고 책임을 다하고자 했던 그 모습에 많은 영화인이 찬사와 지지를 보냈었다. 행정 경험은 없었지만 피하지 않고 부산국제영화제를 다시 정상의 궤도로 되돌리는 데 소임을 다했었다. 그래서 아득한 바다를 바라보는 한 여인의 모습을 담은 부산국제영화제의 공식 포스터를 보고 있자면, 누구나 강수연 배우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제 강수연 배우의 11년 만의 복귀작이자 유작이 된 연상호 감독 작품 '정이'를 그저 기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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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에 개최된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관객 수는 18만4천명이었다. 팬데믹의 여파가 아직은 남아 있지만, 올해 관객 수가 약 16만명인 걸 감안한다면 실로 엄청난 숫자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숫자 이면의 부산국제영화제의 진면목은 당시 영화 시상식이나 TV로는 절대 접할 수 없었던, 어쩌면 숨어서 봐야만 했던 독립영화들을 공식적으로 소개하고 관객들과 만날 수 있게 해 주었다는 점이다. 또한 영화에 대한 탄압과 검열이 여전히 존재하던 그때, 독립영화인들은 부산국제영화제 주요 행사장이었던 남포동에 모여 정치적 탄압 중단과 검열 철폐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당시 영화제 측은 이를 영화제 행사라며, 시위를 해산시키기 위한 경찰과 대치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초창기 부산국제영화제는 영화인들의 해방구와 같은 역할을 했었다.
그렇게 시작된 영화제였기에 이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지만, 2014년 '다이빙벨' 사태는 부산국제영화제를 20년 전으로 순식간에 되돌려 놓았다. 하지만 영화제 초창기에 보여주었던 영화인들의 저항 정신은 여전히 살아 있어, 그러한 부침 속에서도 다시 영화제를 정상의 궤도로 돌려놓고자 하는 싸움을 끊임없이 이어왔다. 그렇게 표현의 자유를 수호하고자 하는 힘은 이제 부산국제영화제를 지탱하는 중요한 버팀목이자 상징이 되었다.
2022년,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양조위라는 걸출한 스타와 함께 그 막이 화려하게 올랐다. 거의 모든 행사가 팬데믹 이전으로 회복했다. 현장의 열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영화제 공식 결산자료에 따르면 영화관 관객은 16만명, 커뮤니티 비프와 동네방네 비프의 행사 관객까지 합하면 총 19만명에 이른다. 영화 비즈니스의 장인 필름마켓은 팬데믹 이전보다 10% 이상 많은 관계자들이 찾아, 죽어가던 영화산업의 부활을 기대하게 했다. 무엇보다 '관객이 만드는 영화제'라는 기치를 내건 커뮤니티 비프가 눈에 띈다.
커뮤니티 비프엔 관객을 위한, 관객이 만드는 여러 프로그램이 있다. 영화제가 관객을 수동적 소비자가 아닌, 능동적 주체로 인식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함께 기획하고 운영하는 형식이다. 특히 '어크로스 더 시네마'는 전국의 커뮤니티 시네마 단체들의 네트워크 행사로, 올해 100명 정도가 참여하였다. 전국 여러 지역에서 시민과 관객 주도의 영화문화를 만들기 위한 커뮤니티 시네마 단체들이 활동하고 있는데, 이번 행사에서는 이 활동들의 의미를 되짚어 보고, 보다 활성화하기 위한 정책과 지원제도는 무엇인지 살펴보는 시간으로 채워졌다. 영화제는 영화라는 예술적 가치와 함께 관객이 참여하고 주도하는 문화로의 확장을 지속해서 시도하고 있는 중이다.
영화제이니만큼 영화를 빼놓을 수 없다. 올해에도 수많은 화제작들이 있었지만, 가장 주목해야 하는 영화를 꼽으라면 단연 유지영 감독의 'Birth'라고 말하고 싶다. 'Birth'는 유지영 감독이 '수성못' 이후 4년 만에 내놓은 장편영화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부문에 초청되어 시민평론가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이 영화를 주목하는 이유는 '수성못'으로 주목받은 유지영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임과 동시에, 2017년 고현석 감독의 '물속에서 숨 쉬는 법' 이후 5년 만에 부산국제영화제에 진출한 대구 영화이기 때문이다. 또한 영화에 참여한 많은 제작인력 중에 촬영, 미술 등 일부 분야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대구영화학교 졸업생 등 대구에서 활동하는 인력으로 꾸려졌다. 장편영화 제작이 쉽지 않은 대구의 제작여건 속에서 많은 지역 영화인들이 그 제작 경험과 노하우를 축적하고, 그것이 부산국제영화제와 같은 높은 위상의 영화제에서 인정받는 것은 지역 영화로서 그 성장 가능성을 높여가는 일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창작자 개인에게도 어렵지만, 다음 작품을 이어나가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이것이 한 영화의 영화제 진출이라는 사건 뒤에 숨겨진 진짜 의미가 아닐까.
물론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건 부산국제영화제가 가지는 위상 때문이다. 그 위상은 표현의 자유를 수호하는 것, 그러면서 좋은 영화와 영화인들을 발굴하고 소개하며 영화인들의 지지를 이끌어 내는 것, 또한 관객이 함께 만드는 영화제로서 열린 자세를 견지하는 것 등 여러 지점에서 그 신뢰가 쌓여서 만들어진 것이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유럽의 0~80년 된 영화제와 비교하면 이제 27회가 된 영화제일 뿐이기도 하다. 앞으로의 더 긴 시간을 내다보며 이 신뢰가 무너지지 않도록 잘 지켜낼 수 있길 바란다.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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