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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경 화가 |
로즈마리 트로켈은 페미니즘이나 문화적 표식, 예술 작품이 탄생하고 역사화하는 과정 등에 존재하는 보수적·전통적 관념에 대항하는 작품을 주로 만든 독일 작가이다. 재료와 매체에 구애받지 않는 작업 방식에 대해 "하나의 제작 방식이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순간 그것은 진부해진다"라고 말한 그녀의 급진적인 작업 태도는 1985년부터 만들기 시작한 '직조 회화(knitted painting)'에 잘 나타난다.
로즈마리 트로켈의 직조 회화는 방직 기계를 이용해 만든 천을 틀 위에 씌운 것으로 추상표현주의, 미니멀리즘, 옵아트 등에 나타난 단순하고 기계적인, 시각적 즐거움만을 중시하는 트렌드에 대한 하나의 목소리로 시작된 것이었다. 밝고 경쾌한 느낌의 줄무늬를 비롯해 플레이 보이의 로고인 토끼 패턴, 구소련 국기와 공산당, 산업 노동자와 농민을 상징하는 망치와 낫 형상 등 다양한 패턴으로 자신의 회화를 완성하였다. 이러한 시도는 예술의 역사에서 주류가 되어 온 사조, 예술적 재료나 매체에 대해 관객이 갖게 되는 고정관념을 지적하고자 한 것이었다.
예술 작품을 컴퓨터나 휴대폰의 화면으로 감상하는 것이 흔한 현상이 된 지금 그리고 회화의 경계가 확장되거나 모호해진 지금, 많은 예술작품이 그렇듯 로즈마리 트로켈의 직조 회화를 이해하기 위해 언어적 해석은 필수적인 요건이 되어버렸다. 단순히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보게 되는 그녀의 회화, 그 경쾌한 줄무늬나 색면의 패턴에 대해서는 추상표현주의, 미니멀리즘, 옵아트 화가들의 화풍과의 차별성을 이야기하기 어렵다.
과한 신비주의, 터무니없는 작품가로 인해 특히 미니멀리즘 화가들은 비판을 받기도 한다. 어느 이론가는 대중이 직접 그려서 걸어 놓으면 되지 않겠냐고 꼬집은 적이 있었는데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림은 잘 그리는 것보다 그리는 것 자체에 그 의미가 있다. 미완으로 남은 몬드리안의 작품, '뉴욕시티 1(New York City 1)'이 뉴욕현대미술관에 75년 동안이나 거꾸로 걸려 있었던 것이 이제야 밝혀진 것은 관객은 몬드리안이 작업 당시에 가졌던 흥분과 열정에 대해 정확히 알기 어렵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알지 못해도 좋다는 것을 동시에 이야기해 준다.
로즈마리 트로켈은 직조를 이용, 많은 회화 작품들을 만들었다. 그것은 그녀의 그림을 추상이나 미니멀리즘에 대한 단순한 반발로 보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서로 어울리는 색의 조합을 신중히 고려한 듯한 산뜻한 줄무늬 회화는 설명이 필요 없다. 색, 형태가 주는 시각적 기쁨은 꽤나 크다.김윤경 화가

김윤경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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