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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규홍 (아트디렉터) |
지난달 말에 영남일보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때 나는 동양화가 신영호 선생, 재즈 연주자 김명환 선생과 저녁 식사 중이었다. 시끄러웠던 장소에서 얼떨결에 연재를 수락한 나는 친우들에게서 축하받았고, 그날 밥값 계산은 내가 치러야 했다. 며칠 뒤 나는 평소에 멘토로 모셔온 한 분을 만났다. 내 근황을 알리자, 그분은 '윤 선생의 경력이나 위치라면 젊고 참신한 필진이 채우는 문화산책 코너보다 오피니언 리더가 투고하는 난이 더 제격이지 않을까'라는 귀띔을 했다.
주변에는 다 고마운 사람들뿐이다. 그날 조언해 준 어른도 그러하고, 나를 믿고 추천한 사람, 제안한 신문사 측도 감사하다. 꽤 옛날 일이다. 여기에 두 달 동안 글을 연재한 적이 있었다. 물론 이후로도 이런저런 신문이나 잡지에 비슷한 식의 글을 종종 써왔다. 일하는 본거지를 딴 지역으로 옮긴 지 몇 년이 흐른 지금, 이 연재는 오랜만에 내 고향 대구에서 발간되는 매체에 싣는 글이다. 고맙다는 말을 그래서 하는 것이다.
나는 발전이 더디다. 우리나라에 개발도상국이란 말이 따라붙던 시절이 있었다. 만약 사람에게도 비슷한 말을 붙일 수 있다면 나야말로 개발도상인이다. 그 사이에 주변의 친한 사람들은 미술관장이 되었고, 기관의 요직을 맡고, 국립대 교수가 되었고, 유명한 작가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나만 그대로이다. 그분들이야말로 자기 시각을 제시하고, 거기에 많은 이가 공감하는 오피니언 리더이다. 그들은 나와는 다른 사람이다. 이건 정말이지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내가 오피니언 리더일 거라고 생각하면 아찔하다. 이 말을 들으면 이게 옳고 저 말을 들으면 저것도 그럴싸해 보이며,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이 왔다 갔다 하는 나는 여론을 이끄는 사람(leader)보다 따라다니는 사람(follower)이다. 그런데 맨 앞보다 뒷자리가 좋을 때가 있다. 앞뒤 눈치 볼 일 없이 모두를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이력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게 예술 비평이라면, 마땅히 그 자리는 앞이 아니라 뒤에 있는 게 낫지 않을까.
책으로 묶어 낼 요량으로 이전에 썼던 문화산책 원고를 다시 읽곤 한다. 예술의 원리, 음악감상실 녹향, 스토리텔링 이야기를 쓰던 당시와 지금의 나에게 크게 변한 건 없으나 그렇다고 아무 일도 없었던 건 아니다. 그 이야기를 하고 싶다. 우리 세상살이와 예술에 관한 전문가의 식견을 내어 보이면 좋을 텐데, 그건 나와 같은 트랙에 서 있는 필자들이 할 것 같다. 이번에도 나는 꼴찌로 달리며, 문화의 장에서 앞서 달리는 자들을 훑어보는 재미로 트랙을 달릴 생각이다. 그럼 출발신호에 따라 첫발을 내디딘다. "탕!"
윤규홍 (아트디렉터)

윤규홍 아트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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