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보는 대구문화 (40)] 이명희, 37세에 김소희 문하 들어…판소리 이수 무형문화재

  • 최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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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1-10 07:13  |  수정 2022-11-10 07:41  |  발행일 2022-11-10 제16면
어린 시절 대구서 여성국극단 공연 보며 춤·노래 따라 부르다 한국정악원서 스승들과 인연
16세 '춘향전' 첫 무대 후 다시 소리한 지 7년만인 44세때 전주대사습놀이 대통령상…영남 판소리 전수 한길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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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의 불모지'라 할 수 있는 대구를 기반으로 활동한 소리꾼이 있다. 모정(慕汀) 이명희(1946~2019) 명창이다. 그는 제16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에서 전라도 명창들이 주로 차지했던 대통령상을 거머쥐었다. 늦은 나이에 판소리를 다시 시작했던 이명희는 대통령상 수상 후 전국적인 인지도를 얻었음에도 대구를 기반으로 활동했다. 자신이 운영하는 판소리연구소뿐만 아니라 지역 대학에 출강하며 대구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데 힘써 전국 각지에서 활동 중인 소리꾼을 여럿 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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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국립극장 무대에 오른 '배비장전'에 출연한 이명희. <영남판소리보존회 제공>
◆스승 김소희 명창과 만남

경북 상주 출신인 이명희는 1946년 12월27일 아버지 이차경과 어머니 이일분 사이에서 태어났다. 과수원을 운영하던 재력가이자 지역 유지였던 그의 아버지는 일본으로 떠나 오랜 기간 집을 비웠다. 이명희의 어머니는 이런 상황이 이어지자 이명희를 데리고 대구로 거주지를 옮겼다. 이명희는 대구에서 수창국민학교를 다녔고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언니가 경영하던 요정에서 지냈다. 당시 그가 지내던 이모 집에는 전국적으로 이름난 예인들의 출입이 잦아 전통예술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이 시기 대구에선 여성국극단의 공연도 많이 열렸는데, 이명희는 어린 시절 이런 공연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춤과 노래를 따라 불렀다. 가야금을 타던 이명희의 어머니는 대구에 머물던 시절, 당시 유명한 대금·해금 산조의 명인 한범수를 만난다. 한범수와의 만남은 훗날 이명희가 스승 김소희 선생을 만나는 계기가 된다.

이명희는 14세 때 서울 종로3가에 있는 한국정악원으로 오게 된다. 한국정악원은 한국 최초의 사립 음악교육기관으로 당대 유명 예술인을 대거 배출했다. 인근에는 유명한 국악인이 모여 살았고 김소희, 박녹주, 박귀희 등 명창들이 자주 들락거렸다. 한범수는 당시 한국정악원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고, 이명희는 잔심부름을 맡으면서 틈틈이 공부했다. 이명희는 원옥화에게 가야금을 배웠고 박녹주와 박귀희에게 춤과 가야금병창을 배웠다. 이때 그의 영원한 스승이 된 만정(晩汀) 김소희(1917~1995)로부터 판소리도 배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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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와 한 무대에서 공연하고 있는 이명희(오른쪽) 명창. <영남판소리보존회 제공>
◆전라도를 떠들썩하게 한 경상도 소리꾼

이명희가 처음으로 공식 무대에 오른 건 1962년 '춘향전'이다. 1963년에는 국립극장에서 열린 '배비장전'에서 통인 역을 맡아 연기했다. 창극 공연 외에도 크고 작은 행사에 따라다녔다.

이명희는 힘든 작업과 여성 국악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 등으로 서울에서 대구로 돌아왔다. 국악과 상관없는 일을 하다가 1976년 29세에 정춘덕과 결혼했다. 이명희는 당시 시집에서 지내면서 농사일이 익숙하지 않은 탓에 고부간의 갈등이 적지 않았다. 심하게 꾸중을 들었던 어느 날, 이명희는 라디오에서 나오는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노래를 따라 부르다가 불현듯 김소희 선생이 떠올랐다. 이후 아이 둘을 데리고 집을 나와 여인숙에서 지내다 파출부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에 무작정 부잣집을 찾아갔다. 당시 찾아갔던 집이 진영건설 사장 집이었는데, 이때 성실함을 인정받아 공사장 현장 식당을 운영하게 됐다. 음식 솜씨가 좋아 이때 제법 돈을 모으면서 이명희는 기회가 닿으면 소리를 다시 하기로 했던 계획을 차츰 실행에 옮긴다. TV에서 스승이었던 김소희가 제자들과 함께 공연하는 모습을 본 이명희는 '내가 그만두지 않았다면 저 선생님 옆에 있을 건데'라며 부러워하자 이를 본 남편은 이명희에게 가야금을 선물했다. 이후 이명희는 다시 소리를 배우기 위해 37세에 김소희 문하에 들어간다. 이때 심청가, 춘향가, 흥보가를 배웠고, 그로부터 4년이 지난 1986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이수자로 인정받게 된다.

대통령상
1990년 제16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판소리명창부 대통령상 수상 후 이어령(왼쪽) 문화부 장관, 손주항 국회의원과 기념촬영을 한 이명희(가운데) 명창. <영남판소리보존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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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영남일보 인터뷰에서 제자들과 함께한 이명희(왼쪽 둘째) 명창. <영남일보 DB>
다시 소리를 배우기 시작한 지 7년 만인 1990년 이명희는 국악인이 선망하는 꿈의 무대인 제16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판소리 명창부에 출전해 대통령상을 받는 영광을 안았다. '춘향가' 중 '오리정 이별' 대목을 불러 이 상을 받았는데, 전라도 소리꾼의 전유물이었던 대통령상을 받자 당시 엄청난 화제가 됐다. 대회 이후 "도대체 이명희가 누구냐"며 그를 찾는 곳이 많았고, 이명희는 정·재계 등 각종 모임에 초청되다 보니 일주일 동안 집에 못 올 정도였다.

이명희의 대통령상 수상은 대구 문화계에서도 이슈였다. 1992년 당시 지역 문화재 위원들은 서둘러 그를 대구시 무형문화재 제8호 판소리 예능 보유자로 지정한다. 당시 대구에서 지속적인 판소리 전승이 이뤄지지 않아 문화재 지정이 논란이 되긴 했다. 하지만 판소리의 문화적 가치, 과거 경상감영을 중심으로 판소리 중흥이 이뤄졌음이 역사적으로 입증된 사실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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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무형문화재 제8호 판소리 예능보유자인 이명희 명창. 영남판소리보존회 제공
◆판소리 보급·후진 양성에도 기여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이명희는 전국 각지에서 초청 공연, 각종 대회 심사를 하며 전국적으로도 명성을 크게 얻었다. 1985년 이명희 판소리 연구소 문을 연 이후 청소년 판소리 강습회를 개최하는 등 판소리 보급에 힘썼는데, 대구시 무형문화재 지정 이후 이 또한 탄력을 받는다. 대통령상 수상을 기념해 청도에는 청소년 판소리 전수소를 마련했고, 영남지역인 성주·구미·포항·부산·울산·김해 등에 영남판소리보존회 지부를 개설했다.

이명희는 판소리 보급과 후진 양성 규모를 키우고자 2001년 <사>영남판소리보존회를 설립했다. 영남판소리보존회는 영남 지역에서 전승하고 있는 판소리 동편제의 전수보급과 해외문화교류사업 등을 통한 전통예술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의 제자들이 늘어나면서 대구에서도 '기생점고' '성춘향' '갑순이 시집가는 날' 등 창극을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그는 국악 인재 발굴을 위한 대회를 여는 데도 주력했다. 대표적인 대회는 전국청소년국악경연대회(현 달구벌 전국청소년국악경연대회)로 내년이면 30주년을 맞는다. 당시 국악경연대회가 성인 중심이었던 점을 아쉬워했던 스승 김소희의 뜻을 잘 알고 있었던 이명희는 스승의 도움을 받고, 자신의 사비를 털어 1994년 제1회 대회를 열었다.

2005년부터 2014년까지 이명희는 대구국악협회장으로 활동하며 지역 국악계의 위상을 높이는 데 노력했다. 그의 임기 동안 지역 국악계의 숙원이었던 대구국악제 전국국악경연대회 최고상을 대통령상으로 격상시켰다. 전임 협회장과 협회 회원들의 노력도 있었지만, 그가 이를 현실화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이명희의 제자이자 딸인 정정미 영남판소리보존회 이사장은 "문화재청에서 국가 문화재로 전환을 하라고 연락이 온 적이 있었는데 어머니가 굉장히 좋아하시다가 며칠 생각하시더니 안 한다고 하셨다. 국가 문화재가 되더라도 대구에 계셔도 됐는데, 당시에는 대구를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셨던 거 같다. 지금 생각하면 어머니의 오직 한마음은 영남의 판소리를 내가 여기서 지키면서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겠다는 마음이셨던 것 같다"고 말했다.

최미애기자 miaechoi21@yeongnam.com

▨참고자료=영남의 소리꾼 모정 이명희(영남판소리보존회)
공동기획 : 대구광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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