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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생명체의 기반이 사라지고 있다
흙은 '검은 금'으로 불릴 정도로 사람과 모든 지상 생명체들에게 너무나 중요한 자산이다. 양이 너무 많아서 평가절하되었을 뿐, 이 흑금의 가치는 황금의 가치와는 비교가 불가이다. 그런데 이런 금싸라기같이 소중한 자산이 비가 쏟아질 때마다 순식간에 사라진다는 것은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EU국가에서만 매년 물침식에 의해 9억7천만t의 표토 흑금이 사라지고 있다. ㏊당 2.46t의 토양이 유실되는 셈이다. 이것은 벨기에 국토면적의 2배 면적에다가 2㎝ 두께로 덮을 수 있는 흙의 양이라고 한다. 세계적으로 240억t의 토양이 유실되고 있는데 인구 1인당 매년 3.4t의 비옥한 토양이 사라지는 셈이다.
문제는 토양 유실은 비가역적이라는 점이다. 한번 쓸려 내려간 흙은 두 번 다시는 돌아올 길이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유실되는 토양이 그냥 흙이 아니라 수백 년의 풍화작용과 미생물의 유기물 분해작업을 통해 작물 재배에 유용하도록 만들어진 표토층의 금싸라기 같은 흙이라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암석이 분해되어 작물 재배가 가능한 2.5㎝의 표토가 형성되는 데에는 500년 이상이 걸린다고 한다. 현재의 유실 속도로만 보면 약 60년 내에 현재의 경작지 표토가 전부 유실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이러한 원인으로 해서 농경지 중 매년 1천200만㏊가 불모지로 사막화되고 있다. 우리나라 전체 경작면적, 150만㏊의 8배 면적이 매년 불모지로 전락되는 셈이다. 이는 2억t의 곡물을 생산할 수 있는 잠재력을 매년 소실하는 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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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양은 위대한 탄소 저장고
지구의 몇 가지 탄소 풀 중에서 토양은 가장 큰 육상 탄소 풀을 구성한다. 육상에서 자라고 있는 식생의 바이오매스로서 5천500억t의 탄소를 보유하고 있으며 대기 중에 7천800억t의 이산화탄소를 저장하고 있는 반면에, 토양은 4조t의 탄소를 저장하고 있다고 한다. 토양이 지속 가능한 방법으로 관리되면 매년 탄소 2.05기가t을 격리할 수 있으며 연간 농업 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의 최대 34%까지 상쇄가 가능한 것으로 추산된다. 토양은 탄소 저장고로서 기후시스템에서 핵심역할을 하고 있지만 토양유실과 토지 황폐화가 이렇게 가속화되면 탄소흡수원 역할은 상쇄되고 오히려 탄소배출원 역할이 커진다.
토양을 복원하려는 특단의 노력이 없다면 토양 황폐화로 인해 2050년까지 거의 70기가t 이상의 탄소가 배출될 것이며 이는 현재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17%를 차지한다. 반면에 토지 복원으로 인한 경제적 이득은 연간 최대 140조달러에 달할 수 있으며 이는 2021년 세계 GDP보다 50% 더 많은 금액이다.
◆토양미생물 생태계가 지구를 살린다
건강한 작물은 건강한 토양에서 나온다는 건 농사꾼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다. 그리고 건강한 토양을 결정하는 것은 토양 속 미생물군이라는 것은 농학자라면 다 인정하는 사실이다. 토양 속 미생물 생태계가 잘 구축되어 있지 않으면 비록 토양 속에 많은 유기물이 있다 할지라도 작물이 그것을 흡수할 수 있는 형태의 무기질 영양소로 분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 소용이 없다. 잘 형성된 토양물미생물 생태계는 유기물을 잘 분해하여 작물에 공급할 뿐만 아니라 병해충에 대한 면역력까지 강한 작물로 만들어준다. 또한 대기 중의 탄소격리, 보수성 확대로 가뭄 예방, 홍수로 인한 토양 유실 방지, 생물 다양성 보장 등의 다양한 혜택을 보장한다. 반대로 토양미생물이 부족하거나 미생물군의 균형이 깨어지면 작물의 생육 발달도 떨어지고 병해충도 득세하게 된다. 이런 땅은 비가 오면 토양 유실은 기본이다.
그렇다면 미생물생태계를 가장 강력하게 파괴하는 것은 무엇일까? 주저할 필요도 없이 답은 바로 화학농약과 화학비료이다. 소량의 화학품도 미생물을 사멸시키는 데는 직방이다. 많이 줄었다고는 해도 아직 매년 전 세계가 1억8천만t의 비료, 425만t의 농약을 뿌리고 있다. 미생물들에게는 핵폭탄과 같은 재앙이다.
미생물 다양성이란 단순히 미생물종이 많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양한 미생물종의 조성비가 적정한 비율로 균형을 갖추고 있는 구조를 말한다. 그러면 미생물 종류와 그 구성비를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미생물의 먹이와 환경을 만들어 줄 투입 유기물 성분과 그 구성비가 미생물종과 그 구성비를 결정한다. 토양학에서 토양 상태는 탄소와 질소의 성분비, 즉 탄질비(C/N율)로 평가한다. 즉, 작물 건강을 결정하는 것은 토양이며, 토양 상태를 결정하는 것은 미생물상인데, 미생물상을 결정하는 것은 투입하는 유기물의 탄질비라는 말이다. 대개 건강한 작물 재배에 좋은 토양의 탄질비로는 20~30으로 권장되고 있다. 즉 탄소 성분이 질소 성분보다 20배 내지 30배 높은 비율이다.
그런데 탄소 성분의 작물부산물인 볏짚이나 콩깍지까지 모두 긁어서 소먹이로 주고 땅에다가는 해마다 화학비료만 던져준다. 그것도 전 세계 화학비료 사용 중 57%는 질소, 나머지는 인산 ·칼리 성분이다. 탄질비는 거의 제로라는 말이다. 그러니 작물이 절대 건강할 수가 없다. 병해충의 식사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니 거듭된 농약 살포로 간신히 건져서 사람의 식품으로 공급된다. 그걸로 우리의 장을 채우며 버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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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내미생물 생태계가 내 몸을 살린다
근래 의학계에서는 '마이크로바이옴'이라고 하는 장내 미생물 생태계가 인체의 건강생태계를 결정하는 기초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 알고 보니 지구의 몸인 땅이나 인간의 몸이나 그 건강 상태를 결정하는 가장 근본적인 기초는 미생물 생태계라는 말이다. 성인 70㎏ 몸무게의 세포 수가 약 30조 개라면 장내 미생물의 수는 38조. 장내 미생물의 유전자 수는 인체의 유전자 수보다 360배나 많다고 한다. 몸속 미생물 생태계의 기관과 조직과 세포와의 연관성을 입증하는 학술연구만도 수만 편이 발표되고 있다.
뉴욕타임스와 아마존에서 오랫동안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던 '장수의 역설'(The Longevity Paradox)이라는 책의 저자 스티븐 건드리 박사는 인체 내 99%나 되는 박테리아의 유전자가 1%밖에 안 되는 인간 유전자의 상태를 지배한다는 주장이다. 장내 미생물 생태계는 인체의 면역체계와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어서 소화기 질환뿐만 아니라 당뇨와 같은 대사성 질환, 아토피와 같은 피부질환, 심혈관 질환, 심지어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 치매와 같은 뇌질환과도 직결된다는 것이다. 장을 '제2의 뇌'라 부른다. 장은 뇌 다음으로 많은 1억 개나 되는 신경세포를 갖고 있으며, 면역세포의 70~80%가 장에 분포되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장내 미생물 생태계의 상태를 결정하는 것은 무엇일까? 당연히 입을 통해서 장으로 무엇이 투입되는가로 결정된다. 그렇다면 장내 미생물 생태계를 파괴하는 가장 결정적인 투입은 무엇일까? 두말할 나위 없이 답은 역시 화학품이다. 수천억 마리도 단번에 죽일 수 있다. 약으로 복용하는 화학약품과 음식으로 섭취하는 화학첨가물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균형 잡힌 적정 구성비의 장내 미생물생태계를 결정하는 것은 무엇일까? 많은 '마이크로바이옴' 연구학자들의 연구 결과는 식이섬유가 풍부한 탄소 중심 식품을 추천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토양 미생물생태계와 마찬가지로, 탄질비가 높은 식품이 장내 미생물 생태계에도 양호한 환경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질소 성분이 가득한 동물성 단백질은 소량만 섭취하고 식이섬유와 탄소 성분이 가득한 통곡물 탄수화물과 통야채 비율을 높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육류소비가 줄게 되면 자연히 토양미생물 죽이기 고투입 화학농업에다가 GMO농법까지 동원할 수밖에 없었던 사료 수요도 뚝 떨어질 것이다. 그동안 전 세계 곡물 생산의 3분의 1이상이 가축 사료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비로소 땅을 살리는 미생물 농법에도 성큼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한동안 '고탄저지(탄소화물은 많이 지방은 적게)'식품이 좋은가? '저탄고지'식품이 좋은가?에 대한 논쟁이 뜨거웠다. 아직도 어느 쪽도 정론으로 결론이 난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마이크로바이옴의 이러한 생리적 메커니즘을 볼 때 한 가지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식이섬유를 제거해 버린 흰쌀·흰밀가루·정제설탕 같은 당 덩어리, 정제탄수화물 중심의 '고당저지'식품도, 고단백질과 고지방 덩어리 중심의 '저당고지' 식품도 장내 미생물 생태계와 우호적인 공생관계를 맺기에는 둘 다 궁합이 맞지 않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명백하게 드러나는 것 같다. 탄질비가 높은 통산물과 고탄저단 식품이 저탄고단 식품보다 장내 미생물생태계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건강한 장내 미생물생태계로 복원시키려면, 나아가 토양 미생물생태계까지 회복하려면 우선 '식탁게임'에서의 승리가 결정적이다. '어디에다가 젓가락을 갖다 댈 것인가'가 내 몸과 우리 땅의 운명까지 결정한다.
우리는 오늘도 식탁 키보드에서 '젓가락 클릭'으로 우리의 남은 생명의 자서전을 한 줄씩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ISC농업발전연구소장·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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