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채형복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시인) |
11월 초 텃밭에는 나름 할 일이 많다. 산속이라 밤이면 날씨가 여간 차갑지 않고, 언제 서리가 내릴지도 모를 일이다. 여름작물은 제아무리 기세가 좋아도 서리를 맞으면 금시에 잎이 시들어 떨어지고 만다. 호박이 그렇다. 어제까지만 해도 호박은 새순을 뻗으며 꽃 피우고 열매를 맺었다. 그런데 밤새 안녕이라고 하루 사이에 찬 서리를 맞고 널브러진 호박잎 꼴이 말이 아니다. 올망졸망 달린 애호박을 거두고 줄기는 전지가위로 잘라 텃밭 가장자리에 덮어두었다. 울타리를 타고 너저분하게 뻗어있던 호박 줄기를 정리하니 텃밭이 한결 깨끗하여 보기 좋다.
고추도 요긴한 작물이다. 붉은 고추를 따고 몇 그루 놔두었더니 크고 작은 고추가 많이 열렸다. 일반 고추와 오이고추는 따서 소금물에 절여두었다. 고기를 먹을 때나 입맛이 없을 때 적당히 삭은 고추를 한두 개씩 먹으면 밥도둑이 따로 없다. 청양고추는 번식력이 대단하다. 가지마다 조롱조롱 매달려 있는 고추를 작은 소쿠리 한가득 땄다. 갈아 저며 두면 음식 할 때 양념으로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다.
이맘때가 되면 가을 당근도 별미다. 8월 초 씨앗을 뿌린 당근은 제법 뿌리가 굵다. 초보 농사꾼은 작물을 거둘 시기를 알기 어렵지만, 당근의 경우는 잎과 줄기의 모양을 보면 알 수 있다. 줄기가 두 팔을 활짝 벌리듯 펴고 잎이 아래로 쳐지면 거둘 때가 되었다는 신호다. 뿌리 굵은 당근은 솎듯이 뽑고 어린 당근은 그대로 두어 더 자라도록 놔둔다. 아침저녁 일교차가 클수록 당근은 밝은 선홍색을 띠고 단맛이 강하다. 미끈하게 잘생긴 당근 하나를 물로 씻어 이빨로 깨물어 먹으니 아삭한 맛이 환상적이다.
텃밭에서 거둔 당근을 먹을 때마다 군 복무하던 때의 기억이 새롭다. 한창 젊을 때라 밥을 먹어도 쉬 배가 고팠다. 공복감은 야간 행군을 할 때 더하였다. 행군하는 길에 당근밭이 있었는데 그냥 지나갈 수 없었다. 걸어가면서 손으로 쓱 당기니 당근은 쉽게 뽑혔다. 대충 흙을 털고 군복에 쓱쓱 닦아 먹으니 꿀맛이었다. 요즘 같으면 난리가 났을 것이다. 그때는 아우 같고 자식 같은 젊은 군인들이 오죽하면 그랬을까 여겼던지 밭 주인도 문제 삼지 않고 눈감아 주었다. 인심이 야박하지 않은 시절이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나 중·노년의 나이에 텃밭 농사를 지으면서 새삼 땅에 대해 성찰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불현듯 시상이 떠오르면 한 편의 시로 담아내기도 한다.
'땅을 보아라/ 이 땅의 푸른 자궁을 보아라/ 땅이 어떻게 그 많은 씨앗을 품을 수 있는지/ 땅이 어떻게 오욕의 시린 눈물을 품고/ 상처 입고 쓰러진 생명을 키워낼 수 있는지/ 붉은 피 서성이는 동맥에서 터져 나온 분노의 함성을/ 총창으로 구멍 난 성긴 심장을 파고드는 야만의 굴욕을/ 한 가닥 원망도 없이 품고 포용하는 이 땅을/ 이 땅의 푸른 자궁을 보아라'(졸시. '땅·2' 부분)
인간은 땅을 딛고 사는 존재다. 두 다리 두 발로 땅을 밟고 우뚝 설 수 있어야 인간은 비로소 독립적이고 완전한 존재로 살아갈 수 있다. 세상에 태어나 부모의 도움 없이 자신의 의지로 첫발을 떼고 뒤뚱뒤뚱 걷는 아이의 미소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땅은 인간에게 바라는 것 없이 묵묵히 자신을 희생하면서도 언제나 우리에게 원하는 것 이상의 선물을 안겨준다. 땅은 지구의 모든 생명을 품고 키우는 위대한 어머니이고, 모성이다. 이제 우리가 따뜻한 눈길로 '어머니-대지'를 안아야 한다.
'대지에 입맞춤을(Kiss the ground)!'
다큐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이 말은 기후와 생태위기에 처한 현대사회가 농업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 할 것인가를 함축하고 있다.
이 영화가 가장 강조하는 이야기는 '땅'이다. 땅이 농약과 화학비료로 뒤범벅되어 오염되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트랙터와 콤바인을 비롯한 농기계로 땅을 갈아엎는 경운이 토양 침식과 사막화의 주된 원인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경운으로 일순간 흙이 부드러운 상태인 것처럼 보이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거칠어져 결국 토양생태계가 파괴되고 만다. 거친 땅을 일구어 농사를 지으려면 또다시 기계에 의존하고, 화학물질을 살포하지 않을 수 없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관행적으로 농사를 짓는 이웃들을 바라보면서 가슴에는 쉼 없는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작은 텃밭 농사를 지으면서도 굳이 기계로 땅을 갈고 일굴 필요가 있을까? 가족이 먹을 채소인데 농약을 뿌리면서까지 때깔 좋고 크게 키울 필요가 있을까? 벌레가 좀 갉아먹으면 어떻고 크기가 좀 작으면 어떤가? 토양살충제를 뿌려 흙 속의 미생물과 벌레를 깡그리 죽인 다음에 씨 뿌리고 모종을 심는다면, 텃밭이 상업농과 다를 것이 뭐 있겠는가? 자연의 섭리에 따라 토양을 보존하면서 농사를 지을 수는 없을까? 오래도록 고민하고 탐색한 끝에 나름의 해답을 찾았다. 바로 자연농법이었다.
농사의 기본은 흙을 보존하고 살리는 데 있다. 농기계로 흙의 겉면만 부드럽게 갈아엎은 상태에서 화학비료와 퇴비를 뿌리는 방식으로는 토양을 회복할 수 없다. 작물 스스로 노력하지 않아도 인간이 충분한 영양분을 공급하는데 애써 뿌리를 땅속 깊이 뻗을 이유가 없다. 관행농의 방식으로 농사를 지은 농토는 나날이 거칠어져 흙먼지가 날리는 사막화의 상태가 되어 종국에는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땅이 되고 만다.
현재의 산업형 농업은 생명을 존중하지 않고 자연의 섭리에 역행하는 다분히 약탈적 농법이다. 전형적인 시장자본주의 논리가 적용되는 현행 방식에 따라 농사를 지으려면 농부는 농지의 규모를 키우고, 비싼 돈을 들여 기계를 구매할 수밖에 없다. 어디 그뿐인가. 화학물질을 살포하여 단기간에 작물을 키워 생산량을 늘리지 않고는 시장에 내다 팔 수조차 없다. 이러한 현실에서 땅이 건강해야 작물이 건강하고, 그것을 먹은 사람이 건강하다고 목소리 높여 주장해 봐야 쇠귀에 경 읽기다.
이제라도 땅을 살리는 농사를 지어야 한다. 땅을 살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곤충과 벌레, 미생물을 농사의 적으로 보아서는 아니 된다. 땅에는 다양한 생명이 깃들어 살고 있다. 그들을 토양을 살리는 우리의 벗이자 이웃 그리고 협력자로 삼아야 한다. 그 생명을 보호하고 살려 땅을 거름지게 만들면, 작물은 힘껏 뿌리를 뻗어 스스로 영양분을 흡수한다. 그 뿌리에 다시 다양한 생명이 서식하고 땅을 거름지게 만드니 날이 갈수록 토양은 활력을 되찾을 것이다. 농부라면 땅을 믿어야 한다. 그 땅이 잃어버린 힘을 되살리는 것이 지구를 지키는 길이다. 위대한 농부들이여, 어머니와도 같은 대지에 입맞춤을!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시인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