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흑인 오르페

  • 윤규홍 아트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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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1-15 07:11  |  수정 2022-11-15 07:19  |  발행일 2022-11-15 제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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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규홍 (아트디렉터)

영화 '흑인 오르페(Black Orpheus)'는 꽤 알려진 옛날 영화지만, 정작 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내가 이 작품을 처음 본 건 대학생 시절에 가던 문화학교 서울에서였다. 그곳은 올해 초 세상을 떠난 최정운 선생이 대표로 있던 서울아트시네마의 전신이다. 그때 흑인 오르페는 이미 나온 지 30여 년이 흐른 뒤였고, 그만큼의 시간이 또 흘러 지금에 이르렀다. 그사이에 나는 흑인 오르페를 MBC 주말의 명화를 통해 봤고, DVD로 사서 몇 번 더 봤다.

영화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사연을 리우 카니발이 벌어지는 브라질 빈민가로 옮겨 재현했다. 모두가 아는 그 줄거리는 음악가이자 시인인 오르페우스가 사별한 아내 에우리디케를 지옥에서 데리고 오는 내용이다. 영화는 남자주인공이 광란의 밤을 보내는 와중에 연인을 떠나보내고, 다음 날 아침에 시신안치소에서 그녀의 주검을 안고 나오고, 주제곡 '카니발의 아침'을 기타 연주하는 에필로그로 마무리된다. 루이스 본파(Luiz Bonfa)가 작곡한 이 곡은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축제가 벌어지는 브라질을 나는 가본 적이 없지만 금요일 밤부터 화요일까지 이어지는 축제 동안 매년 많은 사상자가 나온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살다 보면 가끔 우리도 축제의 후유증을 앓곤 한다. 친구들과 밤새워 놀다가 모두가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에 부스스한 모습으로 집에 간 경험이 없는지? 이런 아침을 맞이하지 못한 이들이 있다. 이태원에서 일어난 10·29 참사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다. 적잖은 이들은 희생자들이 애당초 그런 델 왜 갔냐고 한다. 그 말도 맞다. 첫 번째 칼럼에서 난 하루에도 열두 번씩 생각이 왔다 갔다 한다고 했다. 단, 이런 생각은 해보자. 우리 어른들이 지난 평생을 얌전하게만 살았나? 딴 사람들은 모르겠고, 일단 나는 아니다.

난 고분고분하긴 했는데 엉뚱한 짓은 살금살금 벌이던 아들이었다. 무전취식에 가까운 배낭여행에 여름이면 암벽, 겨울이면 설산을 오르는 산악부원이었다. 문화학교 서울 같은 시네마테크에서 온종일 밥 굶어가며 영화 보던 것도 일탈이자 모험이었다.

그곳을 만든 한의사 최정운 선생도 서울이나 고향 경산에서 병원만 운영했으면 평탄했을 텐데, 그의 예술 영화 인생은 또 어떤가? 코로나 시기 동안 갇혀있던 가련한 세대에게 핼러윈은 작은 탈출구 중 하나였다. 그 옛날 도심으로 쏟아져 나와 성탄 전야와 월드컵 응원을 즐기던 인파 가운데 있었던 세대라면 비난의 권리는 더욱 줄어든다. 이건 애도와 책임 추궁의 문제 아래에 깔린 개성 존중의 문제다.

윤규홍 (아트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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