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만진의 문학 향기] '제2의 인생'은 없다

  • 정만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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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1-18  |  수정 2022-11-18 08:49  |  발행일 2022-11-18 제17면

[정만진의 문학 향기] 제2의 인생은 없다
정만진 (소설가)

1922년 11월18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르셀 프루스트가 타계했다. 소설은 홍차에 살짝 적셔진 마들렌을 음미하던 '나'의 눈앞에 옛 기억들이 줄줄이 펼쳐지는 것으로 시작된다.

어린 시절 방학을 보냈던 마을 콩브레와 그곳 사람들의 일화가 '나'의 의식의 흐름을 타고 끝없이 그려진다. 성당과 종탑, 두 갈래 산책길, 남편 사후 집 밖으로 나가는 법 없이 동네 노처녀 이야기만 해대는 레오니 아주머니….

외롭게 살아가는 동네 음악가 뱅퇴유, 아버지가 죽은 후 영정에 침을 뱉는 뱅퇴유의 딸, 산사나무 울타리 앞에서 만난 질베르트, 은둔자인 척하지만 실상은 형편없는 속물 르그랑댕, '나'가 동경하던 공작 부인의 우아한 모습….

'나'가 짝사랑한 질베르트의 아버지 스완씨는 콩브레를 회상할 때 어김없이 떠오르는 기억이다. 스완씨는 섬세하고 예술적인 귀족이다. 그런 스완씨가 뜻밖에도 화류계 출신 오데트에게 마음을 준다. 자신의 이상형과 거리가 까마득한데도….

스완씨는 문득 오데트에게서 보티첼리 그림 속 여인의 모습을 느끼고, 그 순간부터 질투와 욕망으로 말미암아 기나긴 고뇌를 안겨주는 사랑에 빠져든다.

보티첼리의 그림을 알지 못하는 독자 앞에는 감상과 해석을 가로막는 가파른 고갯길이 놓인다. 이 기나긴 대하소설에는 이런 묘사가 말 그대로 수두룩하다. 그래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는 읽기 힘든 소설이라는 세간의 평가가 따라다닌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사회의 모습과 거대한 자연의 힘을 담아내는 데 골몰하는 일반 소설들과 다르다. '인간' 그 자체와 인간 내면 '의식의 흐름'에 펜의 흐름에 내맡긴 채 유유히, 그것도 엄청난 길이로 흘러간다.

과거를 정리하면서 줄거리만 떠올리는 집착에 빠지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 인생은 수많은 찰나의 집적일 뿐 결코 듬성듬성 놓인 큰 사건들로 구성된 징검다리가 아니다. 모든 시간을 세세히 사랑할 줄 알면 '제2의 인생'을 살 겨를이 없다.

칸 영화제 심사위원장 등 특이한 이력이 눈길을 끄는 프랑스 역사학자 앙드레 모루아는 "세상에는 프루스트를 읽은 사람과 읽지 않은 사람, 두 종류가 있다"라고 했다. 나는 그의 명언을 본떠 그럴듯한 말 하나를 창조해 본다. "세상에는 자신의 과거를 사랑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두 종류가 있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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