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의 영화 심장소리] '문라이즈 킹덤' (웨스 앤더슨 감독·2012·미국)…웨스 앤더슨의 상자 속 세상

  • 김은경 영화 칼럼니스트
  • |
  • 입력 2022-11-18 08:48  |  수정 2022-11-18 08:59  |  발행일 2022-11-18 제39면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로 관객과 평단 모두에 찬사를 받은 웨스 앤더슨 감독은 가장 좋아하는 영화의 하나로 히치콕 감독의 '이창'(rear window)을 꼽았다. 1957년 작이지만, 지금 봐도 재미있는 '이창'은 관음증 혹은 '엿보기'에 대한 영화다. 네모난 화면을 통해 누군가의 삶을 엿보는 것은 영화의 속성이기도 하다. "영화의 환상을 위해 세상을 상자 속에 넣는다"고 한 웨스 앤더슨이 특별히 좋아할 만한 영화인 것이다. 생각해보면 자기만의 독특한 표현법을 가진 감독의 영화를 찾아보는 건 무척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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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회 칸영화제 개막작인 '문라이즈 킹덤'(moonrise kingdom)은 1965년, 가상의 섬 뉴 펜잔스 섬을 배경으로 12세 소년·소녀의 실종을 다룬 이야기이다. 위탁 가정을 전전하는 고아 소년과 부유하지만 외로운 왕따 소녀가 함께 '사랑의 도피'를 떠난다는 이야기다. 화사하고 예쁜 구도에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가득한 영화지만, 결코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는 아니다. 영화 속 아이들은 조숙하고, 어른들은 대책이 없다. 아이들은 어른 같고 어른들은 아이 같은 것이다. 파스텔 톤의 영상 안에는 상처받은 아이, 그리고 진정한 관계를 이루지 못한 어른들이 있다. 이들은 모두 외롭다. 얼핏 동화 풍이지만, 말하자면 잔혹 동화인 셈이다. 이것이 웨스 앤더슨이 본 세상이다.

'문라이즈 킹덤'이란 소년과 소녀의 도피처, 그들만의 아지트 이름이다. 사랑의 도피행을 한 문제아, 외로운 소년이던 샘은 결국 가족이 생긴다. 그에게 손을 내미는 사람은 역시 외로운 어른인 경찰, 브루스 윌리스다. 아무리 조숙해도 아이들이 먼저 어른에게 손 내밀기는 어렵다. 결국 아이들을 보호해야 하는 건 언제나 어른인 것이다. 아이들이 행복해지는 영화의 엔딩이 따뜻하다.

"영화는 억압되어야만 하는 욕망을 안전한 방식으로 경험하게 만든다"는 칼 융의 말을 했을 때, 그럼 소설과 뭐가 다르냐고 묻던 분이 생각난다. "그 어떤 예술도 영화가 하듯 우리의 감정 속으로 직접 들어가지 못한다"는 잉마르 베리만 감독의 말로 답을 대신하고 싶다. 상처받은 아이들이 자신들만의 아지트를 찾아 떠나는 '문라이즈 킹덤'은 사랑스럽고도 발칙한(?) 모습으로 다가와 잊을 수 없는 이미지로 마음에 새겨진다. 이것은 외로운 소년이었던 감독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감독의 이름을 보고 영화를 하나하나 찾아보는 것은 흥미진진한 일이다. 서로 다른 색깔, 서로 다른 시선이 보여주는 세상을 엿보는 건 참 풍요로운 경험이다. 예를 들면 '비주얼리스트'에 스타일을 중시하는 웨스 앤더슨의 영화들을 보고 나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행동파인 켄 로치 영화들을 찾아본다든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극과 극이라 할 만큼 다른 시선의 영화들을 골고루 찾아본다면 세상을 보는 시각이 훨씬 넓어질 것이다.

'인생영화'라 할 만큼 좋았던 영화가 뭐냐고 누가 묻는다면, "가장 아름다운 날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이다"라고 한 시인의 말을 빌려 대답할 것이다. "가장 멋진 영화는 아직 보지 않은 영화다." 

<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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