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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규홍 (아트디렉터) |
지난주에 이어서 오르페우스 이야기 하나 더. 그리스 신화에서 인간의 희로애락을 읊은 시인이자 음악가, 즉 최초의 예술가가 오르페우스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신화는 영화 '흑인 오르페' 이전에 장 콕도의 '오르페우스의 유언'이 이미 고전이었으며, 지금껏 숱한 창작물의 소재가 되어왔다. 이케다 리요코의 '올훼스의 창'이 한국 순정만화에 끼친 영향을 떠올리는 이도 많다.
25년쯤 전 우리 가요에도 이 신화가 등장했다. 강수지가 부른 '하데스'는 부제로 '오르페우스의 눈물'을 달았다. 오르페우스가 아내를 찾아 땅속에 내려가 만난 신이 명왕 하데스이지 않나.
이 노래는 '흩어진 나날들'이 포함된 2집과 '그때는 알겠지'가 타이틀곡인 4집과 더불어, 팬들이 삼대 명반이라고 꼽는 7집 후기작이다. 강수지는 음악성이 야박하게 깎여 평가된 가수다. 진성과 가성을 오가는 창법은 그 시대에 매겨진 잘 부르는 보컬의 기준과 멀었고, 뭣보다 외모가 실력을 가린 경우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강수지는 인기의 절정기 때도 작사가로서, 본인 노랫말은 쓸 줄 아는 능력자로 인정받았다. 여기엔 작곡자 윤상과 이룬 합이 지금도 언급되고 있다.
여기에 묘한 관계가 있다. 사람들은 윤상 작곡·강수지 작사 콤비를 당연시하지만, 윤상의 노래는 윤상 작곡·박창학 작가라는 다른 조합을 떠올린다. 윤상이 강수지에겐 창작물의 주된 공급자였는데, 정작 자기 노랫말은 딴 사람에게 받은 비대칭 거래 관계였다.
강수지와 박창학은 가운데에 있던 윤상을 빼고 일곱 번째 앨범에 이르러서야 '하데스'를 첫 번째 트랙에 담을 수 있었다. 초기에 덜 알려진 몇 곡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들은 왜 일을 함께 안 했을까? 당사자 세 명만이 아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가끔 쓰는 표현 가운데 '어른의 사정'이 있다. 이건 '애들은 몰라도 돼, 너희가 크면 알게 될 일'이다. 음악계 위계 서열이나 사업 방침을 팬들이 알 방법은 없다. 그래도 궁금하다. 느닷없이 교통통제가 되어 시커먼 차들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야 되고, 무슨 건물은 짓다 말고 그대로 있고, 전편과는 다른 배우가 그 사람이라고 우기며 출연한다. 누구나 아는 사건인데 언론은 입을 닫을 때도 있다.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른들만의 사정은 불문율일 수도, 그곳의 관행일 수도, 윗선의 결정일 수도 있다. 난 컴컴한 내부를 가리는 흑막이 예전에는 멋있어 보일 때도 있었다. 요즘은 조금 측은해 보인다. 하데스가 에우리디케를 순순히 보내지 않은 것도 지켜야 하는 피치 못할 사정 때문이었다. 아무리 신이라도 구차한 업무였을 것 같다.
윤규홍 (아트디렉터)

윤규홍 아트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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