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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결수의 'Labor&Effectiveness'(2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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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결수 작가. |
김결수의 2022 '노동과 효율성' 설치 연작의 주인공은 볏짚과 볍씨다.
김결수의 개인전 '노동과 효율성(Labor&Effectiveness)'展이 열리고 있는 갤러리오모크 2층 전시장에 들어서면 논 5마지기(한 마지기 200평)에서 수확한 후 남겨진 볏짚을 켜켜이 쌓아 올린 대형 큐브가 우뚝 자리하고 있다. 그 아래로 미니 큐브 약 2천 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큐브 영상도 재생된다.
작가가 환경과 온도를 맞춰 정성 들여 눈을 틔운 볍씨 싹은 대형 큐브 5면과 미니 큐브에 박힌 채로 생명을 틔워낸다. 시간이 지날 수록 볍씨의 발아는 속도를 낸다. 더불어 볏짚 속에 묻어온 다양한 포자들에서 이름 모를 식물들도 발아를 시작한다.
김결수는 "삶을 살아가면서 긴 세월동안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고 쓰여지고 버려지는 내용물을 찾아 오브제로 선택하고 이를 작품화한다. 벼는 지구 탄생 이후 수만 년간 인간의 식량으로 조달되는 생명의 근원"이라면서 "또한 볏짚은 비록 생명을 다한 재료지만 저의 손길에 의해 새로운 생명으로 순환하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김결수는 '노동과 효율성' 설치 연작으로 30여 년동안 활동해 온 설치미술가다. 그는 예술의 이름으로 수행되는 노동의 의미를 묻고 그 존재 가치에 질문을 던진다. 김결수는 자신의 작품 세계에 대해 "단순한 노동의 반복으로 만들어진 작품은 사실 두드러진 시각적 효과를 주진 않는다. 무언가를 만들거나 누군가의 눈을 의식한 보여주기가 아니라 그저 노동의 흔적으로 남겨진 것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노동의 흔적이 예술가의 여정이라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작가의 이전의 '노동과 효율성' 작업이 방앗간 기계, 고기잡이 배 등 타인이 사용하다 버린 도구를 가져왔다면, 최근의 작업은 자연물에 처음부터 작가의 노동을 투입하고 작가 정신을 가미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 때 전자는 생명력이 거세됐지만, 후자에는 여전히 생명 가능성이 배태돼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이에 대해 작가는 "전작들이 누군가의 노동을 훔쳐 왔다면, 최근작에서는 자연적인 산물들이 선택된다. 인간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한 시점을 '영원한 순환'으로 확장하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부연했다.
작가가 이번 작업에서 보여주는 주된 이야기는 생명의 순환에 관한 이야기다.
이진명 미술비평가는 "김결수는 주변에서 만난 사람들의 생생한 살아있는 실존적 삶을 예술계로 승격시킨다"면서 "온갖 생활의 도구가 되어왔던 볏짚과 그 속에서 자라는 볍씨의 환원적 관계 틀에서, 우리로 하여금 누대에 걸쳐 살아왔던 삶에 대한 근원적 물음을 성찰하게 한다"고 평했다.
또한 이번 전시에서는 드럼통을 활용한 설치 작품과 함께 집을 그려 넣은 회화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집을 그려 넣은 작품들은 백색 종이의 바탕이 날카로운 송곳이나 칼로 무수히 긁혀 보풀 가득한 텍스처가 특징이다. 색감은 먹, 아크릴, 숯가루를 이용해 구현했다. 작가는 "집은 단순한 외적인 형태가 아니라 그 안에 삶과 죽음, 둘 사이 관계와 애환 등이 한 데 담겨 있는 상징체로 삶의 깊이를 생각하게 하려는 의도"라고 전했다. 전시는 11월30일까지.
글·사진=박주희기자 j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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