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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스콧 모건 지음/김명주 옮김 김영사/452쪽/2만2천원 |
2017년 세계적인 로봇공학자인 저자는 불치병인 루게릭병 진단을 받고 2년 시한부 환자가 된다.
절망도 잠시, 저자는 이렇게 말하며 '반란'을 시도한다.
"루게릭병은 내가 죽기를 바란다. 하지만 나는 거부한다. 그렇다고 산송장이 돼 연명하는 것도 거부한다. 다른 모든 루게릭병 환자들을 내버려 두는 것 또한 거부한다."
저자는 루게릭병을 의료 문제가 아닌 공학적 해법으로 다룰 것을 결심한다. 로봇공학자로서의 전문지식과 전문기관의 도움을 총동원해 인간 피터에서 자기 몸과 AI를 융합한 인류 최초의 사이보그 '피터 2.0'으로 다시 태어나기로 하는 것. 자신의 몸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 장애와 질병, 죽음을 정복하고자 한 것으로, 불치병 앞에 좌절하지 않고 주어진 삶이 아닌 새로운 생존의 길을 모색한 셈이다.
책은 저자가 AI 사이보그 '피터 2.0'으로 진화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담은 자전적 기록이자 장애와 질병, 인간과 AI의 미래를 밝히는 특별한 선언문이다.
저자는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문기관의 도움을 받아 위, 결장, 방광에 관을 삽입하는 수술인 트리플 오스토미를 진행했다. 먹고, 마시고, 배설하는 생리적 욕구를 간병인의 도움 없이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뒤이어 침이 기도로 넘어가 질식하는 일을 막기 위해 후두적출 수술을 받았다. 이로써 수명을 연장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목소리를 잃게 된다. 이후 세계 최고의 IT 기업들과 긴밀히 협력해 실제 목소리와 유사한 합성 음성을 구현했다. 이때 만들어진 음성 시뮬레이터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시스템으로 평가받고 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저자는 자신의 얼굴을 스캔한 최신 AI 기반의 3D 아바타, 즉 디지털 트윈을 통해 감정을 표현하는 등 사이보그로서 사람들과 소통했다.
2017년 2년의 시한부를 선고받았던 저자는 2019년 10월 '피터 2.0'으로 변신을 완료했다. 부분적으로는 사람, 부분적으로는 기계, 그러나 분명 살아 있는 존재로 말이다. 한 편의 SF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 이야기는 2020년 8월 영국 공영방송 채널 4에서 다큐멘터리 '피터: 인간 사이보그'로 방영되기도 했다. 뒤이어 자신의 뇌와 AI를 융합해 피터 3.0으로서 불멸의 존재가 되길 꿈꿨지만 안타깝게도 2022년 6월 타계 소식을 전했다.
그는 자기 몸을 기회로 삼아 과학의 새 지평을 열고 인간의 정의를 바꿨으며, AI의 발전 방향을 인간과의 경쟁 구도가 아닌 인간 중심으로 재구축했다. 그렇게 사이보그가 됨으로써 그는 인류의 새로운 미래상을 제시했다.
저자는 "나는 더 오래 사는 방법 같은 데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 이제부터는 나 같은 사람들이 진정으로 '번영'을 누릴 방법을 찾아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처럼 극도의 장애를 앓는 이들이 보다 다양한 선택지 안에서 삶을 영위하고 어떤 순간에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기를 바랐다. 또한 과학의 궁극적 목표가 개인의 배경과 상황, 포부와 관계없이 모두 번영하도록 돕는 일이라고 믿으며 자신의 도전이 인류의 번영으로 확장되길 기대했다.
정재승 뇌공학자는 추천사를 통해 "기술을 통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존재를 확장하려는 한 엔지니어의 숭고한 노력을 직면하면서 감동하지 않을 재간은 없다"면서 "피터 스콧-모건은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자이자 동시에 그 기술을 사용하는 시민으로서 '기술은 본질적으로 인간에게 무엇을 제공해야 하는가'에 대한 인상적인 통찰을 이 책에서 보여준다"고 전했다. 박주희기자 j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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