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 월드컵] 그라운드에 펼쳐진 '전쟁과 평화'

  • 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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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1-28 19:40  |  수정 2022-11-28 20:06  |  발행일 2022-11-29

이번 카타르 월드컵에선 축구가 재현한 '전쟁과 평화'도 관전 포인트가 되고 있다. 국제정치적으로 껄끄럽거나 분쟁 관계에 놓인 국가 간 축구경기는 '대리전' 양상을 띤다는 점에서 해당 국민에게 미치는 정서적 영향은 적잖은 것으로 평가된다. 그만큼 선수들은 예민할 수밖에 없고 월드컵은 더 뜨거울 수밖에 없다.

아시아 축구 맹주 이란이 30일 오전 4시(이하 한국시각) 카타르 도하의 앗수마마 스타디움에서 16강 진출 티켓을 놓고 미국과 피할 수 없는 외나무다리 승부를 벌인다. 양국 사이에는 뿌리 깊은 불화와 갈등의 역사가 존재한다. 이란은 1979년 2월 이슬람 혁명으로 친미 왕정에서 반미 신정일치 정권으로 통치체제가 급변했고, 같은 해 11월 벌어진 444일간의 주테헤란 대사관 인질 사건으로 미국과 단교했다.

또 2015년 서방과 이란이 맺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2018년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정권이 파기하면서 불신의 골이 깊어졌다. 2020년에는 미국이 비교적 폭넓은 지지를 받던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총사령관 거셈 솔레이마니를 암살했다. 이 일로 미국에 대한 이란의 증오와 복수심이 더 깊어졌다는 관측이 많다. 하지만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땐 양국 사이에 화해 무드가 조성되기도 했다. 이란 선수들이 경기 전 미국 선수들에게 꽃다발을 하나씩 건네며 평화의 메시지를 전한 것. 경기 결과는 이란의 2-1 승리로 끝났다.

또 이번 대회에선 코소보와 세르비아 간 민족분쟁의 앙금이 표출돼 논란이 되고 있다. 코소보는 2008년 독립을 선언했으나 세르비아는 아직도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 지난 24일 브라질과 조별리그(G조) 1차전을 앞둔 세르비아 대표팀이 라커룸에 코소보에 대한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깃발을 내거는 사건이 발생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징계 절차에 착수했다. 코소보에서 태어난 제르단 샤키리와 부모가 알바니아계인 그라니트 자카가 이끄는 스위스는 다음 달 3일 오전 4시 974스타디움에서 세르비아와 맞붙는다.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선 영토 분쟁의 대리전이 펼쳐지기도 했다. 당시 8강에서 잉글랜드와 맞붙은 아르헨티나는 '축구의 신' 디에고 마라도나의 '신의 손' 덕분에 2-1로 승리했다. 마라도나가 후반 6분 헤딩슛으로 골을 넣었지만, 이후 머리가 아닌 주먹을 맞고 들어간 것으로 확인돼 숱한 논란을 빚었다. 경기 후 기자들의 질문에 마라도나가 "내 머리와 신의 손이 함께했다"고 답하면서 '신의 손'이라는 말이 생겼다. 이렇게 승리한 아르헨티나는 '포클랜드 전쟁'의 패배를 갚았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영국과 아르헨티나는 1982년 포클랜드의 영유권을 놓고 전쟁을 치렀고, 양측에서 900여명이 희생된 가운데 영국이 승리해 아르헨티나는 앙금을 품고 있었다.

진식기자 jin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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