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더 가볍게, 쉽게, 솔직하게

  • 윤규홍 아트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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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2-06  |  수정 2022-12-06 07:20  |  발행일 2022-12-06 제14면

[문화산책] 더 가볍게, 쉽게, 솔직하게
윤규홍〈아트디렉터〉

겨울이 왔다. 뜨끈한 매운탕이 생각나서 복요릿집에 갔다. 가게 TV에선 월드컵 소식을 내보내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국제스포츠대회는 별 관심 없다. 그렇긴 한데 동계올림픽에서 스키점프 중계는 넋 놓고 본다. 산 중턱 점프대를 도약하고 아득히 날아 땅에 닿는 모습을 보면 난 죽었다 깨어나도 못할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처음부터 지금 같진 않았을 테다. 어쩌다가 몇 미터 점프한 게 시초일지 모르겠다. 사람들 담력이 점점 커지고, 더 멀리 가리란 야심도 커지면서 지금에 이르렀을 것이다. '더 빨리, 더 높이, 더 멀리'라는 올림픽 좌우명에 딱 맞는 종목이 스키점프다.

목적을 향한 희망은 도전이 된다. 그건 성공을 장담 못 하는 모험으로 이어진다. 목적지는 분명한데 가는 여정이 위험투성이인 곳들이 있다. 남극과 북극점에 도달하고,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을 오르고, 바다 가운데 가장 깊은 해구로 내려가고, 달에 발을 디딘 도전은 지난 20세기에 모두 이뤄낸 모험이다. 그 모험은 수많은 목숨과 맞바꾼 성취였다.

내가 먹은 복어 또한 인류 역사에서 누군가의 희생을 밟아 오른 성취다. 올림픽처럼 요리도 신조를 붙인다면, '더 맛있게, 배불리, 깨끗하게'가 아닐까. 맛있고 영양 많고 위생적인 게 중요하지만, 우선 사람이 먹고 탈이 나면 곤란하다. 우리는 선구자들이 시식하며 이룬 모험 덕택에 식도락을 누린다. 에스콰이어 지에서 '패션을 모험하라'는 기사를 봤다. 평소 안 입던 옷차림에 도전하란 말이다. 집 놔두고 고생하는 캠핑이 차박으로 진화했다. 이제 모험은 극지가 아니라, 일상에서 재미 삼아 벌이는 의식주의 도전이 되었다.

물론 지금도 영웅은 있다. 그들은 인류가 한 번도 접하지 않은 공간과 이상을 향하는 대열의 선두다. 아름다움의 영역에도 이들이 있다. 미적인 전위는 새로운 예술과 해석을 이끌고 있다. 그에 비한다면 모험이라곤 고작 등산 몇 번에 예술영화 본 게 전부인 나(영남일보11월22일자 문화산책 참조)에게 도전정신이란 게 있을까. 있다면 지금의 글쓰기다. 적잖은 평론이 미답의 예술세계로 향한다는 의식 때문인지 잔뜩 힘이 들어가 있다. 그중에는 어려운 말이나 사람 이름을 끌어들여 읽는 사람을 기죽이려 하는 글도 있다. 그렇게 해서라도 작품이나 예술가를 제대로 설명할 수만 있다면 괜찮은데 글과 비평 대상이 따로 노는 경우가 많다.

그게 만약 평단이 가진 '어른의 사정'(영남일보11월29일자 문화산책 참조)이라면, 극한의 어법 대신 일상어로 번역하는 게 나대로의 도전이자 모험이다. 더 가볍게, 더 쉽게, 더 솔직하게. 내가 가고자 하는 비평의 경지다.윤규홍<아트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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