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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진 (소설가) |
12월9일은 '국제 반부패의 날'이다. 2003년 UN은 여러 나라가 연루된 뇌물, 횡령, 사기 등 부패 행위를 척결하기 위해 이날을 제정했다. 이때 UN 회원국들은 범죄 행위를 국제법으로 처벌할 수 있는 방안이 담긴 'UN 반부패협약'에 서명했다.
우리나라는 세계 10위권을 넘나드는 경제력을 자랑한다. 하지만 투명성에 관해서는 그 반대 지점을 헤매고 있다. 국제투명성기구가 해마다 발표하는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청렴도는 OECD 상위국가들 중 매년 최하위권에 머무른다. 2021년에 역대 최고 성적을 달성했는데 그래도 세계 32위였다.
외국에서는 우리나라가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지지부진하는 이유의 하나로 공정 경쟁을 가로막는 부패의 관행을 들고 있다. '춘향전'이 증언하듯이 뇌물을 "인정"으로 여기는 인식이 만연한 탓에 실력과 창의성은 '개밥에 도토리'로 홀대받는다. 심지어 우리나라 남자들은 초면에 만나자마자 출신 학교를 서로 확인하고 동문이면 바로 "선배님!" "야, 후배!" 식이 된다.
글을 쓴다는 사람들도 '끼리끼리' 노는 데 익숙해서 세칭 문단정치가 횡행한다. 기성 정치권에 줄을 서서 현실적 이익을 쫓는 문인들도 한둘이 아니다. 우리나라 문인들이 부패 문제를 별로 다루지 않는 것도 그런 풍토의 소산이다. 문인 본인들이 고인 물에 빠져있으니 반부패 작품이 생산될 리 없다.
그 결과, '부패'와 '소설'로 검색할 때 우리나라 작품은 보기 어렵다. 공산당 부패를 다루었다며 '동물농장'이 추천되기도 하는데, 한국 작품은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것이 없다. 중국 문인 쯔진천의 '다만 부패에서 구하소서'가 눈길을 끈다.
금은방털이 전문 팡차오와 류즈가 크게 한탕을 계획한다. 두 잡범은 거금을 빼앗겨도 절대 경찰에 알리지 못할 대상을 물색한다. 그들은 고심 끝에 부패 공무원을 최종 선택한다. 보통사람은 도난 사고에 직면하면 경찰을 찾는데, 부패 공무원들은 신고를 못 하니 철학적으로 그들은 '소외' 상태에 있다.
소외는 '비인간'의 다른 표현이다. 소외되었다는 것은 인간답게 살지 못하는 지경에 내몰렸다는 뜻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부정한 방법으로라도 부자가 되고 싶다. '다만 부패에서 구하소서'의 부패 공무원이 부럽다"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다.
김현승의 '가을의 기도' 마지막 부분이 떠오른다.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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