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희한하다, 치유

  • 임성무 대구 강림초등 교사·전교조 대구지부장
  • |
  • 입력 2022-12-12 07:09  |  수정 2022-12-12 07:20  |  발행일 2022-12-12 제11면

2022121101000312700012581
임성무 〈대구 강림초등 교사·전교조 대구지부장〉

진실과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가 '국가가 전교조 참여 교사인 신청인들에 대해 사찰, 탈퇴 종용, 불법감금, 재판부 로비, 사법처리, 해직 등 전방위적 탄압을 가한 것은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환영하는 기자회견장에 가지 못하고 실시간 시청을 하는데 33년 동안 내가 살아온 삶이 삽시간에 머리를 지나가고, 나는 기어이 울고 말았다. 희한하다. 열흘 동안 아프던 배가 실컷 소리 내어 울고 난 뒤부터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출근도 하지 못하고 혼자 남은 거실에서 한참을 울었다. 치유가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나름 의연하게 버텨왔다고 생각했지만 33년의 상처가 고스란히 내게 남아 있었던 것이다. 올해 5월 해직교사들이 자신이 해직된 당시의 이야기를 짧게 써 모아 백서를 출판했다. 선배 해직교사들에게 글을 쓰도록 연락을 하자 그렇게 말 잘하고 글 잘 쓰는 분들이 도저히 쓸 수 없다거나 심지어는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며 거부했다. 쓴 분들도 그 짧은 글을 쓰는 데 며칠을 울면서 겨우 썼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해직교사 백서를 읽지 못하고 있다.

나와 전교조 해직교사들은 국가폭력에 의한 인권침해 피해자이다. 1989년 국회는 교사의 노동3권보장을 입법화했고, 전교조는 노조결성을 준비했다. 하지만 노태우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했으며 곧바로 탄압에 들어갔다. 전국 거리에는 '하늘 같은 스승 노동자가 웬 말이냐'는 현수막을 걸어 여론작업을 했다. 진실화해위원회 조사를 보면, 1989년 당시 국가는 대통령은 전교조를 '체제 수호 차원'에서 인식하고 대처하라고 지시했고, 안기부의 총괄 기획하에 문교부, 법무부, 보안사령부, 경찰 등 11개 국가기관이 총동원돼 전방위적인 탄압으로 인권침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1989년 8월 안기부는 '전교조 징계조치 이후 전망과 대책'이라는 문건에서 교사 징계 현황 등을 언급하며, 대책으로 "정부의 전교조 가담교사 징계에 대한 당위성 확보와 악화되고 있는 여론의 반전 차원에서 전교조 결성목표가 '참교육'을 빙자해 좌익이념인 '민중교육론'을 교육계에 확산시키는 데 있음을 홍보해 국민공감대를 형성, 교육계로부터 과감히 축출해야 할 것"이라고 제시했다. 문교부는 전교조 결성 전부터 교원 사찰 기구를 만들어 교사는 물론 교사 가족과 학부모의 동향을 파악하고 이를 청와대와 정보·수사 기관에 제공했다. 참교육은 시작부터 좌익용공이 되어버렸다.

나는 교사가 되기 위해 교대를 간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건강악화로 갈 수 있는 대학교가 등록금이 가장 싼 교대뿐이었다. 그래도 학장의 '지성 야성 덕성을 가진 교사'라는 말에 끌렸다. 당시 대학은 80년 광주항쟁의 진실을 알리는 노력이 학도호국단 철폐, 총학생회 부활로 뜨거웠다. 나의 관심은 왜 대학성적이 낮으면 경북 청송, 영양, 봉화로 발령나느냐거나 4년제가 된 교대를 왜 다른 대학 친구들은 인정해 주지 않느냐 정도였다. 이런 불만으로 나는 이 뜨거운 전쟁터에 가담했다. 그러다가 학교도서관 사서 선생이 새로 들어 온 책이라며 '삶과 믿음의 교실'과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를 주었다. 이오덕 선생의 철학과 우리교육 현실을 생생하게 알게 되었다. 그 어떤 교육사상이나 이론서보다 좋았다. 그리고 나는 교사가 되었고, 참교육을 하는 참교사가 되고 싶었다.

그렇게 교사가 되었지만 학교의 부조리는 내가 받아들이거나 적응하기에는 힘들었다. 그래도 옛날 시집간 며느리처럼 3년은 참고 시키는 대로 하려고 했다. 하지만 6월항쟁의 민주화 열기를 따라 일어난 교사들의 교육민주화선언으로 4·19교원노조 이후 죽어있던 교육운동의 불씨가 되살아나고 있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참교육 운동에 참여했다. 여름방학식이 끝나자 잘 알게 된 경찰 둘이 학교를 찾아와서 대구 서부경찰서 앞에 맛있는 국밥집이 있다고 수고했다고 가자고 해서 갔다. 나는 국밥을 반도 먹지 못하고 유치장에 갇혀 국가보안법 조사를 받았다. 학급문집 '안땅골 아이들'이 놓여있었고, 같은 시간 내가 사는 누님 집은 압수수색을 당했다. 첫 번째 어린이날 큰잔치를 하는 교육대학은 장학사 교감으로 포위를 당했고, 대구MBC 방송출연은 번번히 촬영 직전 금지당했다. 나는 그런 세월을 살아왔다. 나는 대안교육 같은 학교를 꿈꿨다. 그런 학교 하나 만들고 싶었지만, 37년 교직을 이렇게 살면서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일들은 대부분 미완으로 끝나가고 있다.

이제 국가를 대표한 대통령이 공식 사과를 하고, 명예와 원상회복을 위한 조치를 발표해 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대구·경북 교육감도 공식사과를 하면 좋겠다. 지역 언론이라도 대구경북 170여 명의 교사들을 조명해 주어 진실을 알려주기 바란다. 성탄과 새해를 맞아 주변에 아는 전교조 해직교사들이 있으면 위로와 축하의 안부라도 물어주시면 고맙겠다. 해직교사 출신 노옥희 울산교육감은 이 소식도 듣지 못하고 오늘 하늘로 훨훨 날아갔다.
임성무 〈대구 강림초등 교사·전교조 대구지부장〉

기자 이미지

임성무 대구 강림초등 교사·전교조 대구지부장 기자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사회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