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우리 동네 버스가 옳았다

  • 양승진
  • |
  • 입력 2022-12-15  |  수정 2022-12-15 06:52  |  발행일 2022-12-15 제22면

[취재수첩] 우리 동네 버스가 옳았다
양승진기자 (경북본사)

25년 전 우리 집에서 학교까지는 약 30리(里). 내 하루 용돈은 버스비(600원)를 포함해 1천500원이었다. 같은 버스를 10분 정도 더 타는 친구는 나보다 더 많이 냈다. 군것질 실컷 하고 600원만 들고 탔다가 잠들어 제때 내리지 못한 적이 많아 기억한다. 목적지마다 요금의 차이가 당연한 줄 믿었다. 그땐.

도회지는 반대였다. 역 스무 개는 족히 지났어도 요금은 보통권 900원이면 됐다. 버스도 1천원으로 똑같았다. 기차가 지하로 다니는 것만큼 큰 충격이었다. '우리 동네는 안 그랬는데.' '역시 도시구나!' '한 정거장만 타면 손해다. 무조건 두 코스 이상 타야지.' 별 생각을 다했다, 그땐.

그런데 우리 동네 버스 말고 요금이 다른 게 또 있다. KTX 요금은 승하차 역에 따라 차이가 크다. 고속버스, 택시, 하물며 공유형 킥보드도 그렇다. 거리와 시간으로 차등을 둔다.

전기 요금은 또 반대다. 다 똑같다. 서울이든 제주든.

국내 원전 27개소는 경북을 비롯해 부산·울산·전남 등 국토 남쪽에 있다. 반면 서울 등 수도권의 에너지 사용량은 국내 전체 40% 수준이다. 인구 절반에 각종 산업시설·기관이 집중돼 있으니 어쩌면 예상된 결과다. 그래서 에너지는 지금 이 순간도 '북상 중'이다.

한국사회는 오랜 시간 '중앙'이라 부르는 수도권을 기점으로 팽창했다. 이 과정에서 지방은 소외됐다. 서울에 살기만 해도 큰 이점인데, 에너지 가격마저 똑같다. 수도권 쏠림은 당연하다. 변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뻔하다.

사회적 비용까지 고려하면 수도권의 에너지 요금은 지방보다 훨씬 싸다. 에너지 생산·송전 과정에서 생기는 지방의 불편은 '남의 일'이라서다. 펑펑 써도 부담 없을 테다.

'에너지 요금 차등화'가 법제화돼야 하는 까닭이다. 망국의 지름길인 수도권 일극 체제를 타파할 유일한 해법이다. 지금과 같은 구조로는 지방은 내세울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지역과 함께 성장한 기업도 지상 목표로 '상경'을 꿈꾸는 마당인데.

시간·거리에 비례해 요금을 책정한 우리 동네 버스는 하루 8대 모두 늘 만석이었다. 에너지 요금도 마찬가지다. 가격·공급량에 관계없이 쓸 사람은 어차피 쓴다. 그렇다면, 에너지가 생산 지역에 혜택을 주는 도구가 돼야 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 동네 버스가 옳았다. 그래서 이젠 전국으로 퍼져야 한다. 늘 그렇듯, 이런 건 빠를수록 좋다.

양승진기자〈경북본사〉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