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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오전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3차전 대한민국-포르투갈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고 16강 진출에 성공한 한국대표팀이 기념촬영을 하며 기쁨을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
정신과 의사 퀴블러 로스는 1969년 부정 - 분노 - 협상 - 우울 - 수용의 순서로 진행되는 '죽음의 5단계'라는 모델을 제시한 바 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환자가 처음에는 그것을 부정하고, 그 뒤는 화를 내며, 그다음은 신에게 살려달라고 비는 등 협상을 시도하다가, 나중에는 깊은 우울증에 빠져들고, 종국에는 자신의 죽음을 수용한다는 것이다. 뒤에 이 이론은 꼭 죽음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여러 경로로 확인되어 왔다. 인간사 모든 나쁜 일에는 이 단계가 비슷하게 적용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었다. 일테면 실연, 낙방, 파산, 해고 등등.
놀랍게도 이것은 월드컵 경기의 실점 장면과 같은 소소한 불행에도 그대로 적용이 된다. 한국 팀은 이번 월드컵에서 총 8골을 실점했는데, 그 순간순간마다 경기를 지켜보던 우리는 이 5단계를 비슷하게 거쳐 가며 암담한 현실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골을 먹는 순간, 우리는 일단 그것을 '부정'하고 본다. "저거 오프사이드 아냐"라고 소리치는 것이다. 실제로 축구 경기에서 들어간 골이 선심의 깃발로 취소되는 건 제법 자주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이것은 충분히 시도해 볼 만한 부정이다. 하지만 대개 골은 정상적으로 들어간 것으로 확인되고 우리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된다. 바로 '분노'의 단계. "아오, 저 자식 때문에!" 여기서 '자식'은 선수일 수도 있고, 감독일 수도 있고, 심판일 수도 있다.
'협상'은 축구경기에서는 비교적 최근 들어서 시도해볼 수 있게 된 단계이다. VAR라는 시스템이 도입된 것이다. 실점하고, 자막에 상대 국가의 점수가 올라가고, 그대로 속행인가 하는 순간, 갑자기 심판이 귀에 손을 대고 진지한 표정으로 어떤 무선을 수신받는 모습이 화면에 잡힌다. 그러면 우리는 갑자기 TV 화면을 보고 외치기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제발 취소! 제발!" 다음 장면에 슬로비디오가 나오면 협상의 여지는 더 커지는 것처럼 보인다. "저거 봐! 분명히 손에 맞았잖아!" 혹은 "거 봐, 쟤가 먼저 손을 썼다니까!" 그러나 여기서도 대개 골은 취소되지 않고 경기는 야멸차게 재개된다. 협상에 실패한 우리에게 이젠 긴 '우울'이 다가온다. 일테면 브라질전의 네 번째 골 직후처럼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는 수용하게 된다. "그래, 쟤들이 볼 차는 게 우리하고 확연히 다른데 이걸 어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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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형 문화평론가 |
한 골이 아닌 대회 전체로 봤을 때도 마찬가지다. 일단 첫 단계 '부정'. 여기서 부정은 '현실 부정'의 의미에 좀 더 가깝다. "우리도 많이 발전했는데, 가나 정도는 이기겠지"와 같은 근거 없는 낙관이 그것이다. 그러나 두 경기가 끝나고 나면 우리는 결국 '분노'라는 뒷골목에 쭈그리고 앉아 있다. 어찌 된 것이 우리는 그렇게 노력하고도 36년째 월드컵에서 제자리걸음 중인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도 한심한 그 '협상'이 또 시작된다. "우리가 포르투갈에 1점 차로 이겼을 때 우루과이가 1-0 혹은 2-0으로 이기거나, 설사 우루과이와 가나가 비긴다고 해도 우리가 2점 차로 이기면…." 그리고 보통은 여기서 우리는 신에게 버림받고 '우울'의 과정을 거쳐 '수용'의 단계로 나아가기 마련인데…, 웬걸 이번에는 달랐다. 벤투호가 기적적으로 '협상'에 성공해버린 것이었다.
그래서 이번 월드컵은 평균적으로 한 3~4번의 대회마다 찾아오는 매우 행복한 대회가 되어버렸다. 부정 - 분노 - 협상에서 갑자기 '대박' - '희망'으로 반전하는 해피엔딩!
2023년에는 독자님들의 인간사 모든 불행이 그런 해피엔딩으로 끝나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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