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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웅정지음·수오서재·2021·283면·1만6천원 |
우리는 최근에 오랜만에 국민적 공감 속에 하나가 되어 카타르 월드컵 16강에 들어가는 순간을 짜릿한 흥분 속에서 맛보았다. 그중에서도 우리가 계속 주목한 영웅은 단연 마스크를 쓰고 뛰는 손흥민이었다. 손흥민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혜성이 아니었다. 한 선수가 혜성처럼 보이기까지에는 선수의 피나는 노력과 함께, 선수 뒤에서 엄청난 정성을 쏟아부은 지도자의 헌신이 있었다.
이 책의 저자는 바로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이다. 그는 충남 서산에서 태어나 축구를 하기 위해 중학생 시절에 춘천으로 이주했다. 이후 춘천고등학교와 명지대학에 입학했으나 바로 상무에 입단해 3년간 뛴 후 현대호랑이와 일화천마(현 성남FC) 프로선수로 뛰었다. 1986년 그는 국가대표 B팀으로 선발되었으나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스물여덟 살에 아깝게 은퇴하고 말았다.
한 가정의 가장이었던 그는 눈물을 머금고 생활체육 시설에서 일용직 트레이너로 일하며, 일이 없는 토요일과 일요일엔 공사판에서 막노동 일도 했다. 그러던 중 아들 흥윤이와 흥민이가 축구를 하고 싶어 할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흥민아, 네가 하고 싶어 하는 축구가 그동안 네 맘대로 했던 '공놀이'와는 딴판이란 걸 알아야 해." "흥민아, 축구 무지하게 힘들어, 너 그래도 할래?"
처음부터 이렇게 다짐하고 본인이 좋아서 하게 되었기에 뒷날 어떤 시련도 견딜 수 있었다고 한다. 흥민이 아버지는 "나는 내 아이들이 돈을 위해 살지 않고 진정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삶을 살길 바랐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말했다. 네 삶을, 주도적인 네 삶을 살아라. 남들만큼 돈을 벌지 못할망정 네가 진짜로 좋아하는 것을 놓치면 안 된다." 그는 아버지이기 전에 진정한 지도자였다.
중학교 3학년 때, 볼이 어떤 위치로 떨어져도 자유롭게 슈팅하려면 양쪽 발을 다 쓸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왼발을 쓰도록 훈련했다고 한다. 그는 오른쪽 축구화의 텅(혓바닥) 위치에 압정의 핀이 발목을 향하게 꽂아 오른발로 슈팅을 때리면 압정이 발목을 찔러 고통스럽게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훈련하여 양발을 자유롭게 쓰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 방법을 흥민이에게도 가르쳐주고, 양말을 신을 때도 왼발부터, 바지를 입을 때도 왼 다리부터, 운동화 끈을 묶을 때도 왼쪽부터, 경기장에 들어갈 때도 왼발부터 내밀도록 했다고 한다. 이렇게 하여 손흥민은 어느 쪽에서 공이 오든 왼발 오른발을 자유롭게 구사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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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문 (전 대구가톨릭대 교수·〈사〉 대구독서포럼 이사) |
1년에 100권 정도의 책을 읽는다는 그는 축구의 기술뿐만 아니라 정신 교육을 남달리 강조한다. 그는 흥민이가 어릴 때부터 "항상 우리 욕심 버리고 마음 비우고 살자"라고 말해왔다고 한다. 지금도 그는 '초심, 초심'을 강조하면서, "자만하지 말라. 축구선수에게 가장 위험한 것은 교만이다. 명성을 쌓는 데는 20년이 넘게 걸리지만 무너지는 데는 3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단일 종목으로 축구보다 영향력이 크고 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하는 스포츠는 없다. 우리들의 자랑스러운 영웅 손흥민의 뒤편에 숨어서 그림자처럼 움직이는 지도자 손웅정은 네덜란드 토털 사커의 창시자이자 불세출의 축구 영웅인 요한 크라워프가 자서전에서 말한 이 말을 들려준다. "내가 만난 월드클래스 선수 중에 인성이 나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너는 축구선수이기 이전에 사람이다. 사람이 먼저다."
이 책을 읽고 문득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흥민이 아버지처럼 철저한 지도자가 되어주지 못한 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전 대구가톨릭대 교수·〈사〉 대구독서포럼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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