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과유불급

  • 김미진 영남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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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2-28  |  수정 2022-12-28 07:27  |  발행일 2022-12-28 제17면
[문화산책] 과유불급
김미진(영남대 겸임교수)

예술의 창작에서 '목적성'은 중요하다. 예술작품이 내세우고자 하는 목적을 향해 바르게 걷는 행위를 통해 관객에게 창작자의 의도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용의 경우 작품 창작에 있어서 의도를 구현하는 작업이 조금 고되다. 창작자가 추구하고자 하는 내용 전달에 말과 글보다 더 힘든 인간의 몸의 행위인 '몸짓'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무용수의 몸을 통해서 창작자가 추구하는 일차원적인 감정부터 철학적 고뇌까지,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들은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실제로 관객들이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창작의 과정에서 목적성의 경로 이탈도 자주 일어난다. 예술가의 창작 의도를 반영해서 작품을 구현하는 일련의 작업 속에서 그 길을 잃고 헤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창작자가 처음 생각했던 작품의 방향성과는 다른 작업으로 나아가는 경우는 대개 욕심이 강해지면서부터다. 무언가 더 새롭고, 남과 다른 내 작품을 내보이기 위해서 특별한 무언가를 떠올리기 위해 노력한다. 하나, 둘,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조합되면서 혁신적인 작품이 탄생한다. 문제는 그렇게 완성된 작품은 처음 의도했던 작품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물론이고, 얼기설기하게 누더기가 돼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욕심을 내려놓으라고 말하고 싶지만, 시쳇말로 자칫 '꼰대'라는 소리를 들을까 조심스럽다.

무용에서 작품의 완성은 미학적으로 평가할 때 춤, 음악, 조명, 의상, 분장 등 개별적 요소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의 어우러짐을 통해 하나로 만들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춤을 잘 추고 못 추고 하는 부분은 논외로 놓고 보더라도, 작품에 출연하는 무용수의 움직임 하나만을 두고 평가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다.

욕심을 버리면 좋아지는 부분이 있다. 아무리 좋은 재료도 적재적소가 아니라 여기저기에 산재하는 상황은 관객에게 일시적인 눈요기가 될 것이며, 흥미로운 장치로서의 쾌감을 선사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이 반복되는 상황이라면 관객들의 피로도가 높아질지도 모른다. 무엇을 말하는지 의도를 알 수 없는 몸짓들로 만들어진 하나의 작품은 목적지를 잃고 표류하는 배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과유불급' 정도가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그 욕심을 움켜쥐고 있으면 좀처럼 다음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좋은 작품을 위해서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조금은 내려놓는 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내려놓기의 가장 좋은 방법이라면 원래의 목적을 잃지 않고 정도로 나아가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김미진<영남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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