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정의 소소한 패션 히스토리] 가죽 재킷과 가방…비건가죽·인조모피…지속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가치와 감성

  • 한희정 계명대 패션디자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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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1-06 08:18  |  수정 2023-01-06 08:23  |  발행일 2023-01-06 제37면
반항적 세련미 내세운 '라이더 재킷'
고급스러운 패션 이미지 '가죽 가방'
동물권리 대두…친환경 브랜드 주목
식물성·바이오 소재 제품 가치 충족
자아실현 욕구 만족…높은 가격 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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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텔라 맥카트니 2015 FW 컬렉션의 인조모피 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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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정 (계명대 패션디자인과 교수)

가죽 재킷과 가방은 패션에서 그 독특한 멋과 재질때문에 중요한 소재로 사용되어 왔다. 가죽 사용의 시작은 기원전 수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비바람 등 거친 자연환경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옷, 신발, 천막, 간단한 생활용품 등으로 사용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후 고대 로마인들은 무두질을 한 가죽으로 신발과 옷 그리고 말안장, 방패 등의 군사 장비에도 광범위하게 사용하였다. 이후 16~17세기에는 지금 핸드백과 같은 용도의 가죽 가방이 사용되었고 18~19세기 산업화가 되면서 가죽은 내구성과 관리의 편리성으로 산업용 벨트, 가볍고 튼튼하면서 부드러운 신발 등으로 사용성이 확장되었다.

현재 여행용 가방에 사용하는 견고하면서 탄성이 우수한 폴리프로필렌이나 폴리카보네이트 등의 소재가 개발되지 않은 19세기에는 주요 교통수단이었던 마차·배·기차에서 짐은 거칠게 다루어졌다. 이에 여행자들, 특히 부유한 부르주아들은 자신의 짐을 보호하고 맞춤으로 디자인하기를 원했다. 이것은 대표적인 명품 패션브랜드인 루이뷔통의 시작이었다. 또한 에르메스는 19세기 초 유럽 귀족들을 위한 하네스(로프에 신체를 고정하기 위해 착용하는 것으로 가죽이나 원단 등의 벨트형 장비)를 시작으로 가죽으로 만든 안장, 재킷, 핸드백을 소개하여 현재까지 세련된 우아함의 전통이라는 철학을 이어오고 있다.

이러한 고급스러운 이미지와 함께 가죽은 거친 패션 이미지를 나타내는 데 제격이다. 오토바이를 탈 때 착용하는 라이더 재킷, 모터사이클 재킷은 1950년대 거친 남성미를 대표했던 영화배우 말론 브란도와 반항적 젊은 감성의 상징이었던 제임스 딘을 필두로 가죽 재킷이 패션을 통해 강렬한 이미지를 나타내기 위한 큰 도구였음을 보여준다. 그뿐만 아니라 1970년대 후반 거칠고 무질서한, 반항적 하위문화였던 펑크(Punk)는 뾰족한 징이 박힌 가죽 재킷으로 반항과 공격성을 의도적으로 나타냈다. 이렇듯 가죽 재킷의 이미지 효과는 어떤 옷을 착용하고 있느냐가 착용자의 심리와 행동에 영향을 준다는 '제복(Uniform) 효과'의 한 사례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죽은 그 특징적인 재질 때문에 패션 품목에 따라 사람들이 추구하는 이미지와 가치가 뚜렷하다. 가죽 라이더 재킷에서 반항적인 세련미를 그리고 가죽 가방에서는 고급스러운 패션 이미지를 나타낸다. 다양한 기술로 가죽의 내구성이나 심미성을 대체할 수 있는 원단이 개발되었으나 '가죽'의 독특한 재질과 감성은 원단의 그것과는 다른 차별성이 있다.

그러나 가죽은 살아있는 생명에서 '미적 패션'의 용도를 위해 얻는 것으로, 이는 현재 전 지구적 주제인 '지속가능성'의 관점에서는 그 사용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다. 특히 악어, 도마뱀 등 희귀 동물의 가죽과 모피는 사용하지 않겠다는 패션 브랜드의 선언들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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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텔라 매카트니 2020 FW 컬렉션. 〈vogue.fr〉

이러한 가치를 오랫동안 실천해 온 대표적인 디자이너 브랜드인 스텔라 매카트니(Stella McCartney)는 20여 년 전부터 친환경의 가치를 브랜드 제품에 적용했다. 2020 FW 기성복 컬렉션에서 소, 말, 토끼 등 만화 같은 동물의상을 함께 선보여 동물 권리와 친환경에 대한 주제를 내세우는 등 환경 가치의 실천을 앞세우고 있다. 론칭 이후 지속적으로 동물 가죽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기치로 가죽과 모피를 사용하지 않고 브랜드를 표시할 수 있는 독특한 원단, 인조 모피나 가죽의 기술을 개발하여 기본적인 내구성과 유명 패션 브랜드의 가치 및 패션 감성을 충족시켰다. 이러한 의류와 가방을 구입한 사람들 중에는 브랜드의 친환경 가치를 알고 구입한 사람도, 혹은 모르고 구입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친환경 브랜드라는 인지 여부보다 패션 제품으로서의 가치가 충족되었기에 '진짜 가죽 혹은 모피로 만든 것이 아닌 패션'에 기꺼이 높은 가격을 지불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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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테가 베네타의 닥나무 껍질 추출 소재의 가방. 〈luxuo.com〉

비건 가죽이 주목받고 있다. 동물 가죽을 대체할 수 있는 것으로 폴리우레탄(PU)이나 폴리염화비닐(PVC)의 인조가죽, 합성피혁이 있지만 식물성 가죽, 에코 가죽으로 버섯 균사체, 선인장, 파인애플 잎 등 식물성 재료로 만든 가죽도 있다. 많은 명품 브랜드에서 이와 관련된 제품을 선보였는데, 에르메스는 버섯 균사체를 가죽처럼 가공한 비건 가죽을 사용한 가방을, 보테가 베네타는 닥나무 껍질에서 추출한 소재의 가방을 그리고 루이뷔통은 재활용 고무, 재활용 소재, 옥수수로 만든 바이오 원료의 소재로 만든 스니커즈를 출시하였다.

모피는 부와 사회적 지위의 상징으로, 가죽은 고급스러움과 독특한 멋으로 패션에서 많은 사랑을 받아 왔다. 그러나 원료 취득과 생산과정에서 비윤리적·반환경적 문제점이 대두되었고, 소비자의 인식이 높아져 많은 패션 브랜드가 가죽과 모피사용 제품을 줄이는 것에 조금씩 동참하고 있다. 물론 가죽에서는 육류 식품에 따른 부산물로 간주하는 가죽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비건 가죽이라도 내구성 등 여전히 해결해야 할 기술적 문제가 많다.

패션은 매슬로의 5단계 인간 욕구 중 가장 높은 단계인 자아실현의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도구이다. 패션에서 가죽은 오랜 시간 동안 그 독자적인 감성과 사용성, 내구성, 오래 사용하고 난 후의 빈티지한 느낌으로 많이 애용되었다. 가죽을 패션에서 단순히 하나의 재료로만 본다면 비건 가죽 등의 개발은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동물 가죽이건 비건 가죽이건 사람들이 기꺼이 수용할 수 있는 가치와 감성을 충분히 고려한 디자인으로 개발이 되어야 할 것이다.

<계명대 패션디자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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