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바라나시'(슈브하시슈 부티아니 감독 · 2017 · 인도)…마음을 찾아 떠나는 여행

  • 김은경 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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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2-30 08:23  |  수정 2022-12-30 08:44  |  발행일 2022-12-30 제39면

바라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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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경 (영화 칼럼니스트)

한 편의 영화를 통해 낯선 곳을 여행하는 건 참 멋진 일이다. 영화 '바라나시'는 '인도인의 영혼의 고향'이라는 바라나시를 잠시나마 체험할 수 있다. 인도의 젊은 감독 슈브하시슈 부티아니가 배낭여행 경험을 바탕으로 각본을 쓰고 연출했다. 베를린영화제 아시아 담당인 미나스키 쉐드 평론가가 2017 최고의 인도영화로 꼽는가 하면, 베니스영화제 10분간의 기립박수로 유명하다.

77세의 다야는 밤마다 같은 꿈을 꾸며 죽음을 예견한다. 가족의 만류에도 바라나시로 떠나겠다고 한다. 아버지를 혼자 보낼 수 없는 아들 라지브는 함께 여행을 떠난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갠지스강 옆,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숙소인 '샐베이션(salvation·구원)호텔'이다. 이 호텔이 정한 규칙은 15일 동안만 머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일밖에 모르는 아들과 죽음을 고대하는 아버지의 낯설고 불편한 동거, 이들은 싸움과 화해를 반복하며 자신들의 인생을 돌아본다. 아버지는 과연 15일 안에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까.

마크 트웨인이 "역사보다, 전통보다, 전설보다 오래된 도시"라 말한 바라나시는 인도인들이 생을 마감하는 데 가장 이상적인 장소로 여긴다. 아버지 다야가 죽음을 예견하자, 바라나시로 떠나는 이유다. 시체를 태우고 화장식을 하는 옆에서 결혼식이 진행되는 그곳은 마치 인생을 한눈에 보는 것 같다.

영화는 자칫 엄숙할 수 있는 내용에 유머를 잃지 않는다. 인도의 독특한 문화를 보여주면서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정서를 담고 있다. '발리우드' 특유의 춤과 노래가 없는 색다른 인도 영화다. "경쾌한 춤과 노래 대신 사실적인 캐릭터와 보편적인 감정, 따스한 기운이 영화를 채운다"는 평이 영화를 잘 드러내고 있다.

죽음이 소재인 영화지만, 세대 간의 갈등이 또 하나의 소재로 등장한다. 아버지 다야와 아들 라지브, 라지브의 딸 수니타 사이의 갈등인데,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갈등은 세계 어디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전통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인도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므로 죽음이 아니라 삶을 다루는 영화인 셈이다. 죽음도 삶의 한 과정이므로.

올해 돌아가신 이어령 선생은 그의 시 '메멘토 모리'에서 "목숨은 태어날 때부터 죽음의 기저귀를 차고 나온다"고 했다. 삶의 한복판에 죽음이 있다는 것, 참 무겁고도 엄숙한 말이다.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도 자기 죽음은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한다. 타인의 죽음은 철장 속에 갇힌 호랑이지만, 자기 죽음은 눈앞에서 달려드는 호랑이라 표현했다고. 죽음은 누구에게나 가장 크고 무거운 인생의 숙제인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마냥 무겁지 않다. "감히 죽음에 미소짓게 하는 영화"라는 말 그대로다.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며 인생에 대한 통찰력이 담긴 영화, 그러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으니 썩 괜찮은 영화다. 한 해의 끝에서 인생을 돌아보며, 지혜를 얻고 싶은 분에게 기꺼이 추천할 만하다.

"마음에 귀 기울이고 마음이 있는 곳을 찾아라. 그래야 마지막이 편할지니"라는 아버지 다야가 노트에 적어둔 이 말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

<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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