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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수 (더편한속 연합내과 원장) |
새해가 되면 연례행사로 구충제를 복용하는 사람이 많다. 기생충 질환은 사람의 대변을 거름으로 쓰던 과거에 많이 유행했지만, 거름이 화학비료로 바뀌면서 토양을 매개로 한 기생충은 대부분 사라졌다. 다만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정이 늘어나고, 날것을 즐기는 식문화 때문에 식품을 매개로 한 기생충 감염은 지속되고 있다. 또 해외여행 후 기생충에 감염되는 일도 있어 케케묵은 옛날이야기쯤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기생충 감염의 빈도는 과거와 비교해 거의 사라졌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줄어들었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는 없다. 따라서 기생충에 대한 과한 공포심이나 예방 목적으로 구충제를 정기적으로 먹을 필요가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사라지지 않는 두 가지 기생충 질환이 있다. 첫째는 간흡충(간디스토마), 두 번째는 고래회충증(아니사키아시스)이다. 이 기생충은 약국에서 파는 일반적인 구충제로는 치료가 되지 않아 주의가 필요하다.
간흡충은 인간의 담도에서 살아가며 번식하는 기생충이다. 민물에 사는 쇠우렁이를 중간 매개로 하여 붕어, 잉어, 향어 등의 민물고기로 옮아가며, 이 민물고기를 날것으로 먹으면서 사람에게 감염이 된다. 이후 우리 몸의 담도에서 자리를 잡아 성장한 후 담즙을 먹고 살아가게 된다. 다 자란 간흡충은 매일 수천 개의 알을 낳게 되며, 이 알은 대변으로 빠져나가 강으로 흘러 순환하게 된다. 특히 낙동강 인근에서 많이 발견되어 우리 지역에서는 더욱 주의해야 한다. 간흡충에 감염되더라도 증상이 없는 경우가 많아 스스로 감염된지 모르는 경우가 많고, 20~30년 동안의 긴 생존 기간을 가지고 있어 앞으로도 이 기생충이 사라지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 기생충에 감염이 되더라도 대부분 무증상이거나 가벼운 복통을 보이지만, 심한 경우 심각한 복통, 식욕부진, 발열, 설사 등의 증상이 생기고, 담도를 막을 정도로 기생충이 많다면 담도염이나 담도폐쇄 등으로 황달 등의 증상이 생기기도 한다. 또 감염된 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담관의 만성적이고 지속적인 손상으로 간 내 담관이 늘어나는 등 흉터를 남기거나, 담도암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에서도 담도암의 원인 중 하나를 간흡충으로 규정하고, 1군 발암물질로 지정하였다. 이 기생충의 치료는 시중 약국에서 쉽게 살 수 있는 구충제로는 제거할 수 없고, 의사의 처방이 꼭 필요한 특수한 구충제(프라지콴텔)를 먹어야 한다. 하지만 만성화되어 담도에 이미 일어난 손상은 호전되지 않고, 담도암의 발생 또한 증가하므로 간흡충에 감염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그런 만큼 자연산 민물회는 반드시 피해야 한다.
그렇다고 민물회만 조심해야 할 것은 아니다. 바다에서 잡은 어류에게도 기생충이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고래회충증이다. 새우를 중간숙주로 물고기나 오징어 등으로 전해지며, 이후 고래, 물개 등 해양 포유류에 도달하게 되면 끝이 난다. 해산물 중 붕장어(아나고), 광어, 방어, 조기, 명태, 낙지, 오징어 등에서 많이 발견되고, 이것을 날것으로 먹으면서 우리 몸으로 들어오게 된다. 고래회충의 최종 목적지는 고래나 물개여서 사람의 위장에서는 번식할 수 없고, 우리 몸에서는 유충 형태로 며칠밖에 살지 못한다. 따라서 우리 몸에 들어오더라도 위장에서 저절로 죽고, 특별한 증상 없이 자연 치유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때때로 위벽을 파고들며 심한 복통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자연산 활어회, 오징어회를 먹고 나서 수 시간 내에 심한 상복부 통증, 오심, 구토 등의 증상이 있다면 이 병을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고래회충증은 구충제로는 효과가 없어 조기에 병원을 찾아 위내시경을 해야 한다. 위내시경으로 위벽을 파고드는 고래회충의 유충을 간단한 내시경적 시술로 제거한다면 금세 통증은 사라지고 치료된다. 다만 드문 경우 위벽을 뚫고 복강으로 들어가거나 소장이나 대장으로 넘어간다면 내시경으로 제거할 수 없고, 이후 염증을 일으키거나 종양을 일으키는 경우도 보고되고 있는 만큼 회를 먹고 심한 복통이 발생한다면 조기에 병원에 방문해야 한다. 고래회충증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평소 생선을 익혀 먹고, 기생충이 많은 내장 부위를 피해야 한다.
다만 양식한 활어는 새우를 먹이로 주지 않고, 사료를 먹여 키우기 때문에 고래회충에 감염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정연수〈더편한속 연합내과 원장〉

정연수 더편한속 연합내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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